한정식은 한식 코스화 퓨전화한 것…서양식 좇다 한식 본모습 잃을 수도

한정식 하면 한식의 코스요리를 말한다. 그런데 한 상에 음식을 다 차려 내오는 공간 전개형 식단을 하는 집도 간판에는 한정식집이라고 붙어 있다. 이게 바로 우리 식생활 문화의 현주소다.

엄밀히 말하면 한정식은 한식을 서양의 시간 계열형 식단(코스)과 퓨전화한 것이다. 공간전개형 식단, 즉 한 상에 차려 내오는 집은 한정식집이 아니라 한식 또는 반상 집이다.

우리의 전통은 바로 한 상에 차려 내오는 공간전개형 반상문화다. 이 반상을 혼자 먹을 수 있도록 독상으로 차려 내는 것, 즉 쟁첩(뚜껑이 있는 반찬 그릇)의 수에 따라 3첩 반상, 5첩 반상, 7첩 반상으로 불리게 되며, 이 반상은 음식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알맞게 차려 내는 것이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앉아서 먹는 것은 주안상 형식의 건교자(乾交子), 밥상 형식의 식교자(食交子), 주안상과 밥상 형식을 함께 갖춘 얼교자(얼치기상) 등 3가지가 있는데, 이 교자상도 역시 모두 공간전개형이다. 이렇듯 시대 변화에 따라 전개형 식단인 반상이 코스요리로 변하면서 한정식이라는 신조어가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식 코스요리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전개형 식단은 수요자(식사를 하는 사람)가 식 행위를 주도하지만, 코스요리는 공급자(요리사)가 식 행위를 주도해 수요자는 메뉴 선택권만 갖고 있을 뿐, 요리사가 주는 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맛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는 주식과 다양한 부식 나름의 맛도 즐기지만 주식과 부식, 부식과 부식을 함께 먹음으로써 그 어우러짐으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반찬 간과 맛의 어우러짐으로 5미뿐만 아니라 6미, 7미 등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개개인의 성별, 나이, 건강상태, 기분에 따라 음식을 차별화해서 즐길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공간전개형 식단은 합리적인 건강식단으로 권장할 만한 것이다. 일본의 사각쟁반에 개개인별로 공간전개형으로 차려내는 정찬요리 역시 우리의 독상 문화에서 비롯된 문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조상의 세련된 문화를 고루하다고 생각하는지 전혀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그러면서 간판에는 버젓이 전통 한정식집이라고 한다. 아이러니도 보통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우리는 배선 방법만 변한 게 아니라 한식요리법도 아주 많이 변해 있다.

원래 한식은 까다롭지만 여러 단계의 조리방법을 거쳐 깊은맛이 나오는 데 비해, 최근 한식은 레시피를 중심으로 간편 단순하게 조리를 해 한식 특유의 깊은맛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재료만 국산을 사용했지(최근엔 재료도 세계화) 조리법은 일식과 양식 조리법으로 한식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아이러니한 일은 한정식집에서 기본적으로 나물·채소를 절여 먹고, 데쳐 무쳐 먹고, 삶아 국 끓여 먹고 하는데, 전채요리로 우리의 겉절이만도 못한 샐러드가 나온다. 스테이크 등 육식을 주로 하는 서양 사람들이 섬유질 섭취를 위해 생야채를 그대로 썰어 소스를 부어 먹는 샐러드가 한정식집에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어느 분 표현대로 소 여물 썰 듯 생야채를 마구 썰어 소스 부어 먹는 것도 무슨 요리라고 하나. 한정식집의 샐러드는 코미디 중의 코미디다.

일부라고 해 두자, 한식의 기본도 모르는 한정식집 주인과 한식조리사들이 한식을 다 망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이 서양식단을 따라하다 비만과 성인병 인구의 증가로 후회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웃나라가 이미 겪은 아픈 전철을 그대로 이어받는 어리석음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LA를 방문해 모 일간지 기자와 대화 중 우리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한식 일품요리를 핵심으로 하여 미국식단에 맞게 식단을 짜 세계화하도록 해야겠다고 말을 건네자 질색했다.

"선생님! 아닙니다. 우리 것은 우리 것 그대로를 보여줘야 합니다. 최근에 서서히 미국 주류사회 사람들도 한국 음식과 전개형 식단에 매력을 느끼고 많이 찾습니다."

지금 한정식집에서 전채요리랍시고 샐러드를 내놓으며 시대적으로 앞서가는 식단인양 하지만, '김치와 샐러드' 18세기까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던 서양 사람들의 미래 선택은 샐러드 아닌 김치가 될 것이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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