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 만복이 깃들길 빕니다.”,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길 빕니다.” 새해를 지나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주고받았을 인사말이다. 사회 구성의 가장 기초 단위로서 가정이 건강하고 평화로워야 궁극적으로 그 사회도 건강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니 우리 모두를 위해 개개의 가정에 만복과 건강과 행운을 빌어주는 인사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막연하게 가정의 건강, 행운 등을 빌어주고 있는 좋다면 좋은 관행에 이제 조금 시비를 걸어볼까 한다.

최근 몇 년 새 부쩍 높아진 이혼율, 저출산, 비혼남녀의 증가들로 그간 우리 사회에서 고착되어 온 가정의 형태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난 해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가부장적 가족 질서와 가정의 형태는 법의 테두리 속에서 이제 벗어나게 되었다.

이는 사회 환경이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는 현상일터, 여기서 시비를 걸고 싶은 부분은 사회의 흐름이 이런데도 아직 우리의 습성 속에 있는 가정은 부모와 자녀가 다 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 있는 핵가족 형태나 남자 쪽 가족들이 함께 있는 대가족 형태를 가장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여기고 있는 부분이다.

무엇이 ‘정상적 가정’ 인가

그리고 이러한 가정의 건강, 평화, 그 밖의 즐겁고 편안한 가정에 대한 모든 수식어에 걸맞은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가부장적 질서를 바탕으로 한 여러 관행들, 특히 헌신적인 여성의 역할을 아직도 기대하고 있는 인위적인 사회분위기이다.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고 다양해지고 있는 가정의 형태들은 아직 편견에 갇혀 가정의 건강과 평화, 행운들을 누가 기원해준다고 할 때 서로가 갖는 기대치가 달라 때로는 더욱 큰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으니, 앞으로 가정과 사회의 평화가 한 수레바퀴로 갈 수밖에 없음을 생각한다면 정상적 가정에 대한 편견을 우리 모두 하루바삐 버려야 한다.

아무리 외형으로 부모자식이 다 있는 핵가족 형태나 보기 좋은 대가족 형태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있어 미움과 증오로 대립되어 있다면 이는 헤어져 사느니보다 더 못한 가족공동체일 수 있다.

자신의 가정에 대한 자긍심이 자라나는 자녀들의 정서에 크나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바깥으로 나타나는 가정의 형태보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갈등과 다툼 없이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고 위하며 살아가는 지에서 자긍심이 우러나오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현실은 아직 외형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있다.

사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위할 줄 아는 자세는 아직도 가정이나 학교에서조차 거의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가부장적 관습 아직도 두텁다

무의식 속에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는 말은 “…안하면 혼내 줄거야!”이고 아직도 이혼 소장 속에는 “맞을 짓해서 때렸죠”라고 가정폭력의 변을 말하는 남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정이든, 학교든 모두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관리 통제라는 사람관계가 아직도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이에 맞는 신분등록 상의 행정적 절차를 위한 준비는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의식의 변화, 관습의 새 옷을 갈아입는 준비는 전혀 되지 않고 있다.

다양한 가정 형태를 받아들이는 일, 가족 구성원 간에 지시 명령이 아닌 존중하는 가운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일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일이며 필요 없는 정서적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일이거니와 나아가서 건강한 의식을 가진 우리 사회구성원을 배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 환경을 부정적으로 보느냐, 긍정적으로 보느냐는 삶의 행복을 누리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아직도 학교폭력을 걱정하면서 결손가정 때문이라고 전통적 핵 가정의 해체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는 교육당국은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있어 이러한 면에서 의식의 변화부터 새로 꾀해야 할 부분이다.

가정에서 가족구성원들의 관계, 역할도 이제 새 옷을 입을 채비를 해야 하겠다.

명절만 되면 아직도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수많은 며느리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가족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위에 가정의 평화를 기대하기보다 서로 존중하고 위하며 행하는 가운데 진짜 가정의 평화와 만복이 깃듦을 느낄 수 있는 병술년이 되길 바란다.

/정혜란(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원마산지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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