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두려웠다. 민주화운동의 열기로 뜨겁던 80년대 말도 아니고, 첨예한 이해관계나 요구가 걸린 일도 아닌데, 최소 400명의 시민을 한 자리에 모은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행정기관이나 정당처럼 일사불란한 조직을 가동한 것도 아니고, 직원들이 돌리겠다고 들고 나간 초청장도 200여장에 불과했다. 그나마 제대로 전달은 됐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지난 10월의 마지막 밤 ‘경남도민일보 독자한마당’ 행사를 서너 시간 앞둔 내 심정은 그랬다.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아는 분 20여 명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날따라 무슨 회의는 그리도 많은 지, 올만한 사람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불참이란다.

꼭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대우백화점 18층은 진짜 넓다. 오죽하면 이 건물을 짓던 당시 ‘한강 이남에선 가장 큰 빌딩’이라고 했을까. 진짜 운동장 만한 넓이다. 그런 곳에 참석자가 적으면 얼마나 썰렁해 보일까?

드디어 오후 6시30분. 독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7시가 되자 준비해놓은 46개 테이블 322개 좌석이 모두 차버렸다. 독자들의 행렬은 오후 10시까지 이어졌다. 준비해간 홍보물 봉투 550개는 두 시간만에 동이 났다. 공식집계 결과 참석자는 최소 600명이었다.

사실 참석자의 숫자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행사를 준비한 입장에선 그것만큼 신경 쓰이는 일도 없다. 반대로 참석자의 입장에선 행사의 알찬 내용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행사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 평가를 받아본 결과 10여 가지에 이르는 중대한 문제가 지적됐다.

그럼에도 나는 경남도민일보의 기자로서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참석자의 99%가 그냥 평범한 시민이며, 그야말로 도민일보를 아끼는 독자들이었다는 거다. 대개 언론사에서 창간 몇 주년 기념식이라는 이름으로 힘깨나 쓰는 기관단체장들을 부르는 행사는 흔하지만, 이런 식의 순수한 독자들이 모이는 자리는 우리나라 전체를 따져봐도 없다. 그날 참석자 가운데 이른바 ‘끗발’있는 분은 권영길 국회의원과 황철곤 마산시장, 정수태 마산중부경찰서장을 포함, 대여섯 명 정도였다.(물론 그분들도 모두 우리의 소중한 독자님이다.)

두 번 째로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이 정식 창립됐다는 거다. 창원 동읍에서 농사를 짓는 김순재씨가 임시의장을 맡아 아무런 사전 시나리오 없이 고용수·김소봉·김용택·박흥석·이병하씨를 공동대표로 선출했다.

회칙에 나와 있는 독자모임의 창립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도민일보가 계속 올바른 언론으로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감시’하는 게 그 하나요, 그런 도민일보가 가장 모범적이고도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또 하나의 목적이다.

솔직히 회사 입장에서 볼 때 독자들의 이런 상설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건 엄청난 압력이며 부담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내에선 우스개소리처럼 ‘호랑이 새끼’ 운운하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도민일보 독자들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건방진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다른 언론사에선 억지로 만들고자 해도 만들 수 없는 조직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자랑이 심하지 않느냐고?

이쯤 되면 너무 자기 자랑이 심하지 않으냐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다. 맞다. 자랑이 하고 싶어 죽겠다. 나는 우리 독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내친 김에 우리 독자님들 자랑 하나 더 하자. 지면평가위원회 이야기다.

2000년 제1기 지평위가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그건 한국 신문사상 최초의 독자참여기구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경남도민일보의 지면평가위원회는 신문관련법에 법조항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전국의 모든 신문들이 도민일보 편집규약과 지평위 활동을 벤치마킹하기 바쁘다.

idomin.com이 도내 인터넷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고, 하루 실방문자가 2만~3만명(순방문자는 1만5000명 정도)에 이르는 것도 순전히 2600여명의 객원기자와 수준높은 독자층 덕분이다.

이제 남은 건 종이신문의 유료독자다. 꼭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라지만, 이건 중요도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다. 염치없지만 한번 더 독자님들의 바짓가랑이를 잡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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