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비에 목매는 예산철 지방자치단체
무늬만 아닌 재정분권으로 나아가야

예산철이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예산안을 짤 때부터 국회와 의회에서 심사를 거쳐 예산을 확정하는 중요한 시기다. 한해 살림이 달린 자치단체는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실 문턱이 닳도록 다닌다. 이제 국회 심사 과정에서 깎이거나 빠진 사업비를 살리려고 땀을 빼는 마지막 관문이다.

30년이나 됐다는 지방자치 단면이다. 정부 예산에 목을 매야 하고, 한 푼이라도 국비를 더 배정받으려고 애써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구조에서 진정한 자치를 말하기는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주민들이 뽑지만 권한이나 재정은 여전히 중앙정부 입김이 세다.

경남도 내년 예산안 규모는 14조 2845억 원. 지난해보다 14.5%(1조 8118억 원) 늘었고, 국비 11조 원에 수치로만 보면 많다 할 수 있다. 세입별로 보면 국고보조금이 59%(8조 4324억 원)를 차지하고, 지방교수세는 7.6%(1조 801억 원) 수준이다. 지방세 수입은 26.6%(3조 8050억 원)에 그친다.

지방자치 핵심은 재정분권인데 현실은 이렇다. 그래서 ‘2할 자치’라는 자조는 여전하다. 그나마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 대 2에서 7.5 대 2.5로 조금은 나아진 게 이 정도다. 인구가 많고 지방세수가 많은 수도권을 제외한 자치단체 살림은 비슷한 처지다. 국비 의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에서 국비를 더 받아오려고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란 말이다.

경남도 내년 세출예산에서 사회복지·보건 분야가 44.1%(6조 2944억 원)를 차지한다. 갖가지 노인과 어린이, 저소득층을 위한 국가정책에 따른 수당이 많다. 국고보조가 많을수록, 공모사업을 많이 따내 국비를 확보할수록 지방비를 더 보태고 자체사업 재원을 말라가는 굴레다. 경남도 재정은 들어왔다 80% 시군으로 내려간다.

하면 좋은 걸 모르지 않는 농어촌기본소득을 두고 벌어진 갈등 바탕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남해군은 내년부터 2년 동안 군민 1인당 매월 15만 원을 지원한다. 연간 추산예산 702억 원 중 부담은 국비 40%(281억 원), 지방비 60%(도비 126억·군비 295억 원)다. 경남에서 1000억 원이 넘은 자체 부담만으로 농어업인수당을 시행해왔는데, 도는 정부 정책에 따라 추가 부담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시도지사들이 지난 12일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재정분권 약속 이행을 요구한 이유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정부 사업에 과도한 지방비 매칭 문제를 지적하며 재정이 거덜나겠다고 했을 정도다.

자치단체장이 공약을 이행하려 해도, 새로운 정책을 입안해 집행하려 해도 그럴 돈이 없다. 내년에 신규사업으로 12억 원을 들여 추진하는 경남도민연금만 봐도 큰마음 먹은 정책이다. 경남도 내년 주민참여예산사업 예산은 86억 원(55건)이다. 주민참여예산은 주민자치 상징인데, 말 그대로 상징 수준에 머물러 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지방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분권 목표 국세-지방세 비율을 7 대 3으로 잡았다. 자치단체 재정자립도 전국 평균 43.2%(경남 34.3%)에서 재정자치는 먼 이야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비판도 있다며 지방자치단체 대신 ‘지방정부’라 쓰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름만 지방정부라 부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해본 대통령이 더 잘 알 것이다. 재정분권이 지방자치 핵심임을.

/표세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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