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해놓고 재정 다이어트하나
교부세 줄어든 지역 살찔 틈도 없어
"돈을 찍어내나." 초등학교 다닐 때다. 아침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준비물 사야 한다며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엄마가 종종 했던 말이다. 주고 싶어도 없어서 못 주는 부모 마음이 더 아팠겠지만 눈물 짜면서 학교에 갔다. 수확기가 아니면 집에 돈이 말라 빌릴 때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치권이라면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빚을 내서라도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미래 세대 약탈'이라고 했다.
5월까지 올해 국세 수입은 총 160조 2000억 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조 4000억 원이나 깎였다. 이 추세대로면 세수 결손은 더 증가한다. 나라살림에 문제가 생기면서 지방자치단체 곳간도 비상이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거래 위축으로 지방세수는 감소하고, 최악 세수 펑크에 지방교부세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방교부세는 정부가 자치단체 간 재정력 격차를 해소하고자 내국세 중 일정 비율(19.24%)을 나눠주는 재원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올해 자치단체에 줄 교부세는 정률분 68조 7000억 원에서 6조 5000억~7조 1000억 원이나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경남도가 받을 보통교부세는 최대 1088억 원, 창원시는 867억 원 준다. 경남 군지역 감소 규모는 200억~300억 원이다.
전액 균형재원으로 쓰는 종합부동산세수도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 부동산교부세 불용액은 2조 6900억 원에 이른다. 종부세 완화로 덜 거둔 만큼 자치단체에 주지 못한 규모다. 종부세 수입은 올해 2조 원 더 줄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예견된 사태다. 세금을 거둬 살림을 살아야 하는데, 경기침체 영향도 있지만 세수 펑크 주원인은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인 대기업과 부자 감세 정책이다. 법인세 인하를 서민·중산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했지만 투자·고용 같은 낙수 효과는 없었다. 극소수 서울 부동산 부자들 세금만 깎아줬다.
곳간 비상 상황은 우리 자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치분권 핵심 중 하나는 재정분권이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최소한 6 대 4로 만들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7 대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가 곳간 열쇠를 쥐고, 통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꼴이다.
지방교부세 법정률은 2006년 19.24%에서 오르지 않고 묶여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구체적인 재정분권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지역균형발전 비전' 15개 국정과제 가운데 지방재정력 강화에서 '지방교부세 법정률 등 지방재정 조정제도 개선 검토'라고 했을 뿐이다.
10%대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군지역 자주재원 쪽박은 더 작아질 판이다. 사업비를 깎는 감액 추가경정 예산안을 짜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곳간에서 인심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라를 위한 재정 다이어트라는 말에 속을 텐가.
/표세호 자치행정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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