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통째로 삼킬듯한 공포와 두려움 가시지 않아
사흘째 산불과 사투, 쉴새 없이 진화작업 계속돼
"마을을 집어삼킬 듯 불길이 일렁이며 마을 앞까지 들이닥쳤습니다. 평생 처음 보는 산불입니다. 아직 마을이 통째로 삼켜질듯한 공포와 두려움 가시지 않아요."
23일 사흘째 산불과 사투를 벌이는 산청군 시천면 현장은 처참했다. 단성면에서 시천면으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군데군데 경찰이 나와 있었다. 소방차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화선을 구축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산불이 시작된 시천면에 들어섰다. 도로 주변에는 듬성듬성 화마의 흔적이 보였다. 바람 방향에 따라 산불 지역에서 내려오는 연기가 스쳐 지나갔다. 잠시 차를 세운 구만마을에서는 한 주민이 어제 (22일) 시작된 불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주민이 가리킨 곳은 연기가 오르며 송전탑이 불길에 싸여 있었다. 지나가다 차를 세운 이들도 도롯가에 머물며 산불 걱정에 혀를 찼다.
연기가 나는 산불 현장을 지나 시천면 덕산약초시장 인근 시천천 일대에 도착했을 때는 연신 물을 퍼 나르는 헬기 소리에 귀가 멍했다. 인근에서 카페 주인은 불길이 넘어 올까 봐 하루 종일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카페를 찾은 손님들도 주민 대피령에 옷가지 몇 벌과 현금만 들고 나왔다며 두려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피~피~ 주민 대피를 알리는 긴급재난 문자는 틈을 주지 않고 울렸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천면 도로에는 연신 소방차와 경찰차, 산불진화차량이 지나갔다. 소방차에는 가까운 진주부터 남해, 합천 등 경남지역 소방서부터 대구 달서구, 전북 임실, 광주 등 소방서 이름이 적혀있었다.
시천면 덕산마을에 사는 한 주민은 평생 이렇게 많은 헬기를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헬기 소리를 듣고 있다 밤이 되면 헬기가 날지 않아도 헬기 소리가 들리는듯한 이명을 경험한다고 했다.
덕산마을 지나 산불통합지휘본부가 있는 산청양수발전소까지 이동했다. 국동마을 인근 국도 한쪽에는 불탄 자동차가 한 대 모습을 보였다. 22일 바람이 거세지며 불이 산을 넘어 도로까지 내려오면서 시천천 강둑과 과수원, 마을 쉼터까지 덮쳤다. 불길이 지난 곳은 시커멓게 그을려 밤사이 지나갔던 화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산청양수발전소 마당에 꾸려진 산불통합지휘본부에 도착했다. 지휘본부는 쉴새 없이 돌아갔다. 산림청 직원을 비롯해 경남도, 산청군, 소방서, 경찰, 육군 39사단 등의 관계자가 보였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특수산불진화차량도 눈에 들어왔다. 산불 현황을 브리핑하는 시간이 되면 진화율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지휘본부는 주민 안전을 우선 고려해 방화선을 구축하고 헬기로 불을 잡아 나간다는 계획을 설명했다.
전날 한 때 지휘본부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창녕군 소속 공무원과 산불진화대원 4명이 산불에 고립돼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애도와 추모 시간을 뒤로하고 지휘본부 인력들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휘본부에서 나와 주민들이 몸을 피한 장소로 향했다. 21일 처음 산불이 발생하고 대피한 장소는 시천면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이었다. 넓은 공간에 텐트를 치고 임시 거주 공간을 마련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22일 저녁 산불 확산으로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주민들은 인근 학교와 금서면에 있는 동의보감촌으로 옮겨야 했다.
대피장소에서 만난 원리마을 80대 한 주민은 "집에서 잠을 자다가 경찰이 깨워서 대피했다"며 "하루빨리 산불이 진화돼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신상을 밝히지 않은 한 주민도 "불이 마치 널뛰듯 마을로 넘어왔다"며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평소 기관지가 좋지 않았는데 연기를 마셔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들 모두 빨리 산불이 진화돼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되찾길 희망했다.
/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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