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36.5] 취준생 김윤지 씨
20일자 신문 기고문 화제
"사람마다 글의 향기가 있어"
할머니 이야기 계속 쓰고파

최근 경남도민일보 기고 한 편이 화제가 됐다. 11월 20일 자 8면(여론면)에 김윤지(27) 씨가 쓴 '나 혼자 산다-할머니 편'이란 글이다. 

"하동군 고전면 작은 시골 마을은 권태롭고 평화롭다. 하지만 그곳에서 80년 넘게 살아온 나의 외할머니 일명 '잔너리댁'의 일상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시작한 글은 시골에 혼자 사는 외할머니 최재연(87) 씨의 하루를 전지적 시점으로 그렸다. 덤덤한 듯 뛰어난 묘사에 많은 이들이 감탄했다.

11월 20일 자 8면(여론면)에 김윤지 씨가 쓴 '나 혼자 산다-할머니 편'. /갈무리
11월 20일 자 8면(여론면)에 김윤지 씨가 쓴 '나 혼자 산다-할머니 편'. /갈무리

25일 현재 조회수가 1만 5000회를 넘겼다. 독자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할머님의 일상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그림책으로 펼쳐지는 듯하다."(정현순), "글을 읽으니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매 장면이 그려진다. 너무나 생생해서 마음 한편이 뭉클해진다."(박하성) 같은 댓글을 달며 김 씨의 글솜씨를 칭찬했다.

심지어 기고가 나간 며칠 후 어느 출판사로부터 할머니 이야기를 같이 써보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신문사 내부에서도 도대체 어떤 이인지 궁금함이 컸기에, 김 씨를 직접 만나 글을 쓰게 된 배경과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본가가 있는 창원에서 만난 김 씨는 어릴 적 유난히 컸던 울음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우는 소리가 너무 큰 탓에 이웃에서 민원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가족은 하동군 고전면에 사는 그의 외할머니집으로 이사를 했다. 김 씨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냈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외할머니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가 됐다.

김 씨는 2021년 부산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준비한다. 서울에 있는 고시촌에서 살며 시험을 준비했지만 공부가 쉽지 않았다. 늘 긴장 상태로 있다 보니, 건강도 안 좋아졌다. 혼자 울거나 자책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때 힘이 됐던 건 엄마가 성대모사 하며 들려주는 할머니 일상 이야기였다. 그렇게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나면 또 며칠을 잘 버틸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하동은 제게 늘 쉼터 같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할머니와 직접 통화는 잘 하지 않았다. 취업준비생인 자신의 상황이 할머니에게 걱정을 끼친다는 생각에서다. 가끔 할머니가 먼저 전화를 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김 씨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왼쪽부터 김윤지 씨, 외할머니 최재연 씨, 어머니 김미현 씨. /김윤지
왼쪽부터 김윤지 씨, 외할머니 최재연 씨, 어머니 김미현 씨. /김윤지

신문 기고는 본가에 잠시 머물며 쓴 것이다. 솔직히 취업을 위한 경력(스펙)을 쌓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는 올해부터 진로를 바꿔 기자직을 준비하고 있다.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딱 15분 만에 완성한 글이라고 한다. 특별히 공을 들이지는 않고, 그저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썼다. 갑작스레 이렇게 주목을 받으니 어안이 벙벙하다는 그다.

그렇지만 그의 글솜씨가 하루아침에 완성된 건 아니었다. 그는 글쓰기에 대한 정의를 그 나름으로 내리고 있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자기 생각의 논리 구조가 정확히 있는 것이에요. 저는 글마다 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감성이 문체에 묻어나잖아요. 글쓰기는 인간이 지녀야 하는 소양이라고 봅니다."

김 씨가 기고한 글은 산문에 가깝지만, 그는 평소 정치 철학과 시국을 연결한 논설문을 많이 쓴다. "최근에는 플라톤이 말한 철인 정치와 현재 대통령 비선 논란을 연결해서 썼어요. 지금 한국 정세에서 플라톤이 제안한 정치 철학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요." 

소재를 정하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관련 문장이 떠돈다. 특히, 첫 문장에 공을 들인다. "저는 글을 쓸 때 첫 두 문장을 정하면 글은 다 썼다고 생각해요. 그 뒤는 술술 나오니까요."

그의 기고문은 이렇듯 평소 문장을 고민하던 수많은 순간과 할머니를 사랑하는 진심이 어우러져 완성된 것이다.

김윤지 씨 기고 글의 주인공 외할머니 최재연 씨. /김윤지
김윤지 씨 기고 글의 주인공 외할머니 최재연 씨. /김윤지

인터뷰 중 외할머니 최 씨와 직접 통화를 했다. 손녀가 자신에 대해 쓴 글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무척 뿌듯해했다.

"어려서부터 지를 델꼬 키웠으니, 쟈도 할매를 좋아하는 편이지. 앞으로 좋은 일만 되고(생기고),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지."

김 씨는 앞으로 할머니 이야기를 꾸준히 써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기고문으로 용기를 얻기도 했고, 할머니 이야기를 계속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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