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거란이 고려를 침입하자 선조들은 국난을 이겨내고자 초조대장경을 판각했다. 그러나 1932년 몽골 침입으로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에 당시 집권자였던 최우는 이듬해인 1233년 몽골의 침략을 막아내고 분열된 국론을 바로잡고자 곧바로 재조대장경 판각을 준비했다. 1237년부터 본격적으로 판각하여 1248년까지 총 16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익히 아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대장경이다. 아시아에서 현존하는 유일하고 완전한 목판 불경인 고려대장경은 대한민국 제32호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그러나 이 문화유산이 어디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에는 비교적 관심이 적다. 고려대장경 종경록 27권 '정미세분사남해대장도감개판' 기록에 따라 남해군 일대가 판각지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다. 도민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대부분 고려대장경이 남해에서 판각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남해군은 판각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국민에게 알리고자 꾸준히 노력해왔다. 2012년부터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시행했고, 판각 당시의 고려시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대장경 판각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판목'과 '각도'가 발견되면서 남해가 판각지였음을 증명했다. 이에 2017년 고현면 선원사지와 백련암지가 경상남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2년 고현면 탑동에 대장경판각문화센터를 건립하여 판각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남해군, 불교계, 역사학자 등이 참석한 '고려대장경 판각지의 현대적 재발견'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판각지 성역화를 통한 관광자원화 사업 추진 등에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우리가 고려대장경 판각지를 복원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목판인쇄 문화의 전통을 지키고 이어 나갈 뿐만 아니라, 800여 년 전 선조들의 국난 극복을 위한 호국정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경상남도의 '지역특화사업 연구용역 대상지 발굴사업'에 올해 남해 고현면의 판각지 일대가 선정되었다. 올해 '남해군 고려대장경 목판인쇄 문화 복원사업'을 위한 연구용역이 시행된다. 연구용역이 완료되면 내년 도비 지원을 통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을 계기로 판각지가 대장경, 장경판전과 함께 묶어 세계문화유산 지정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고려대장경 판각지는 경남 남해였음을 전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류경완 경남도의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