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15일 선거 날 오후
초등생 개표장서 경찰에 돌 투척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서 첫 확인
진실 규명자 총 320명으로 늘어
3.15의거 참여자 명예 선양 권고

시위대가 마산 부림시장을 거쳐 구 북마산파출소 앞을 지나 당시 철로길 밑 거리로 행진하고 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시위대가 마산 부림시장을 거쳐 구 북마산파출소 앞을 지나 당시 철로길 밑 거리로 행진하고 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3.15의거 당시 초등학생도 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국가기관 조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 때 일어난 부정선거에 반발한 마산지역 시민들이 일으킨 민주화 운동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열린 제75차 회의에서 ‘3.15의거 시위 참여 확인 사건(21명)’을 진실 규명했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가 규명한 3.15의거 사건 진실 규명자는 299명에서 320명으로 늘어났다.

조사 결과 이번에 새로 확인된 시위 참여자 21명은 초등학생 3명, 중학생 13명, 고등학생 3명과 성인 2명이다. 당시 학생들은 3.15의거 때 마산상업고등학교·마산공업고등학교·마산중학교·마산중앙중학교·마산동중학교·마산여자중학교·진해여자중학교·무학국민학교·회원국민학교에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시위에 개별적으로 나서거나, 마산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 대규모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 대열이 마산 부림시장 앞을 지나는 모습(1960년 4월 11일~13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위 대열이 마산 부림시장 앞을 지나는 모습(1960년 4월 11일~13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무학국민학교 학생이던 신청인 ㄱ 씨는 “3월 15일 오후 5시께, 동네 형 고 김영호 등과 개표장소인 마산시청에서 대치 중이던 경찰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등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 발포로 교방동 화장터에 숨어있다가 다음 날 새벽 2시께 귀가했다”고 진술했다. 그날 신청인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고 김영호는 3.15의거 희생자다.

3.15의거 당시 마산중학교 학생이던 신청인 ㄴ 씨도 조사에서 “3월 15일 오후 6시경, 친구들과 만나 불종거리에 있던 군중과 마산시청으로 거리 행진했다”며 “경찰과 대치하던 중 경찰 발포로 도망치다가 친구와 경찰로부터 폭행당하고 연행되는 것을 목격했고 친구와 판자촌에서 하룻밤 자고 귀가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친구는 경찰에게 폭행·연행·구금당한 사실이 인정돼 4.19혁명공로자로 올라가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청인과 진실규명 대상자 모두 조사에서 시위 참여 사실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참고인 진술을 비롯해 3.15의거 시위 관련 각종 문헌 자료·언론보도 등과 부합한 점 등을 볼 때 시위 참여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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