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서 나아갈 힘 줬던 리더
마음에 우주 담으라는 말 새길 것

바람이 찹니다. 스카프 한 장을 목에 매어 보지만 파고드는 쌀쌀함에 몸은 움츠러듭니다. 봄이라며 이르게 벗어버린 얇은 속옷 한 장이 못내 아쉽습니다.

교육장님, 기억하시나요?

새로 옮긴 교육청에서 저는 섣불리 일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두 달여 고민 끝에 기획한 사업안을 들고 부속실을 들어섰습니다. 서투른 저처럼 결재판 안에서 대여섯 장의 서류도 움츠려 있었습니다.

'오늘 결재를 잘 받을 수 있을까? 행여 사업 내용이 마음에 들지는 않을까? 어떤 지적을 하실까? 잘못된 내용은 없을까?'

"똑똑."

부속실을 거쳐 빼꼼히 인사를 드리고 마주 앉았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순간 속에 펼쳐든 결재 서류를 쭉 훑어보며 "고생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시면 되겠습니다."

흔쾌한 교육장님의 말씀에 저는 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어요."

"걱정하지 마셔요, 장학사님. 이 행사에 한 사람이 와도 괜찮습니다. 좋은 강의를 듣고 한 사람이라도 생각을 바꾸고 정보를 얻어 간다면 그래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하셔요. 수고 많으시겠습니다."

부속실을 나오며 저는 자못 뿌듯했습니다. 커다랗게 부풀던 걱정은 이내 작아지고 대신 자신감이 움텄습니다. 다음 진행을 위해 발걸음은 빨라지고 커졌습니다. 기획 서류에 오류가 없지는 않았을 테지요. 아마도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터입니다. 저 자신이 몇 번을 고민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그것이 교육장님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없을 터였습니다.

장학사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전문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쌓은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인지 아니면 다시 행정에서 전문성을 쌓으라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인턴의 시간을 거쳐 몇년의 장학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외롭고 고단한 생활이, 전문직으로서 담금질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리더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멀고도 험한 그 길이 두렵기도 합니다.

오늘 당신의 가시는 길에, 당신을 부여잡고 흘린 눈물은 마냥 헤퍼진 50대 아줌마의 눈물은 아닙니다. 여기저기 가시에 찔리며 한껏 움츠러든. 그래서 세상을, 교육 현장을 디디며 나아가기에 주저하던 저에게 한 발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던 사람을 보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장학사님은 울보라며 속내 모르는 주무관님들이 저를 놀립니다. 저들도 저를 따라 가슴속으로는 서운했을 터인데도 말이지요. 저는 오늘 당신을 가장 크고 환한 웃음으로 보내드리고자 사실 많이 노력했습니다. 눈물을 참는 방법을 검색했답니다. 속으로 구구단도 외워보고 말입니다. 눈물이 나오려는 순간 좌뇌를 쓰게 하면 된다나요?

다음에 당신을 만나면 우뇌와 좌뇌 가득하게 웃음으로 채우겠습니다. 당신 덕분에 이만큼 잘 왔노라며 한껏 웃음을 키워놓겠습니다. 마음에 우주를 담으라는 말씀도 실천해보렵니다.

의령에 해가 일찍 뜹니다. 새벽의 찬 공기가 봄을 재촉합니다. 이슬 맺힌 빈 들녘도 이제 새로운 씨앗을 품을 준비를 합니다. 당신을 닮은 봄의 훈풍이 또 채비를 합니다.

/황선영 의령교육지원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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