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여자들의 살롱] 글쓰기 모임
(하)당신에게 보내는 응원

늘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궁금했다. 수미 작가(본명 김수미)가 창원에서 진행하는 모임 '우울한 여자들의 살롱' 이야기다. 처음에는 '우울한 엄마들의 모임'에서 시작했다. '편안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우울한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취지에서다. 지금은 엄마에서 여자로 범위가 넓어졌다.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이므로 아무렇게나 불쑥 끼어들어 들어 볼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달에는 글쓰기 모임 형식으로 열렸다. 글은 어떻게든 그 결과가 남는다. 게다가 주제가 '응원'이라니 요즘 소개하기 딱 좋다. 수미 작가에게 조심스럽게 그 결과를 공유해도 될지 물었다. 공개에 동의한 분들의 글을 익명으로 여기에 세 번에 걸쳐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수미 작가가 쓴 글을 소개한다. 

카레나 짜장을 끓일 때는 넓은 냄비를 꺼낸다. 다섯 명의 가족구성원이 여러 끼를 먹어도 충분할 만한 양을 끓여야 하니까. 길게 썬 양파를 오래 볶고 감자는 크게 썰어 넣는다. 아이들이 골라내는 당근은 잘게 썰어 넣고 고기를 넣는다. 재료를 볶고 뜨거운 물을 넣어 잘 섞는다. 카레 가루를 듬뿍 넣는 것이 맛의 비결이다. 카레 가루가 잘 퍼지도록 저어주면 며칠 동안 반찬 걱정이 없다. 그릇 한 쪽에 밥을 푸고 옆에 카레를 듬뿍 담아내면 보기도 좋다. 그리고 남은 건 반찬통에 덜어 놓는다.

동네 친구는 혼자 아이를 키운다. 그는 밥 빼고 모든 것이 할 만하다고 말한다. 평소 식욕도 없고, 식탐도 없는 그에게 밥 차리기는 가장 우울한 일에 속한다. 자신의 취향과 욕구 그리고 자식의 선호를 섞어 밥 차리는 일은 고단했다. 그는 가장 간편하게 먹는 방식을 택했다. 낫또를 사두거나, 생야채를 싸 먹는 다거나, 후리카케를 뿌려 먹었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봉인된 것처럼 거즈를 덮어둔 가스레인지를 본다.  그의 부엌에는 기름 냄새도 수증기의 흔적도 없다.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 주방은 절간처럼 고즈넉하다.

동네에 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부엌에서 밥을 할 때 떠오르는 사람도 늘어난다. 누군가는 한 끼를 편안하게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 더 음식을 만든다. 얼마 전 아이들과 걸어오다 한 여자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의 양손을 비슷한 체격의 아이 둘이 꼭 붙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었고 곧 쌍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선이 마주친 우리는 서로 목례를 주고받고도 그대로 지나치질 못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쌍둥이 맞죠? 가끔 오가면서 봤어요. 쌍둥이인 거 같다고 생각만 했는데.”

여자의 아이들은 세 살이었다. 엄마 손을 꼭 쥔 아이들, 그리고 피로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자신의 아이보다 훌쩍 큰, 나의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을 뗐다.

“몇 살이에요?”

“아홉 살요.”

“그때쯤 되면 안 힘드나요?”

나는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고충이 찾아온다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이야길 했다.

“그때가 가장 힘들 때잖아요.”

여자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 다시 물었다.

"아이들이 크면 진짜 좀 덜 힘들어져요? 괜찮아요?"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또 우물쭈물하다가 잠시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저녁 식사 시간 전이었다. 집에는 점심에 끓여둔 짜장이 있었다. 후다닥 집에 들어가 깨끗하고 적당한 용기를 찾아 짜장을 담았다. 그리고 내가 쓴 책 한 권을 뽑았다. 종이가방을 들고 내려가면서 ‘이래도 될까’고민이 됐다. 이게 무슨 오지랖일까. 처음 본 사람에게 음식을 드리는 건 불편한 일 아닐까. 고민하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여자는 여전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저기, 제가 만든 짜장인데 좀 나눠드려도 될까요?”

차례가 좀 바뀐 거 같은데. 머쓱하게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책도 함께 건넸다.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이다.

수미 작가가 쓴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수미 작가가 쓴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제가 쓴 책인데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요."

여자는 책보다 짜장이라는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너무 좋아요, 저녁 거리 없었는데. 잘됐다. 얘들아 오늘 저녁은 짜장이다!"

아무렴 책이 당신의 밥 차리기 노동을 덜어줄 순 없는 일이다. 나는 짜장을 챙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리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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