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여자들의 살롱] 글쓰기 모임
(중)나에게 보내는 응원

늘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궁금했다. 수미 작가(본명 김수미)가 창원에서 진행하는 모임 '우울한 여자들의 살롱' 이야기다. 처음에는 '우울한 엄마들의 모임'에서 시작했다. '편안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우울한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취지에서다. 지금은 엄마에서 여자로 범위가 넓어졌다.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이므로 아무렇게나 불쑥 끼어들어 들어 볼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달에는 글쓰기 모임 형식으로 열렸다. 글은 어떻게든 그 결과가 남는다. 게다가 주제가 '응원'이라니 요즘 소개하기 딱 좋다. 수미 작가에게 조심스럽게 그 결과를 공유해도 될지 물었다. 공개에 동의한 분들의 글을 익명으로 여기에 세 번에 걸쳐 정리한다. '나에게 보내는 응원'에 이어 이번에는 '당신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이제는 알 것도 같은 

이 글은 아마도 내가 참 못난 딸이란 걸 고백하는 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결코 전하지 못할 진심이기도 하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엄마에게 내가 자주 했던 이야기는 '나는 엄마의 꼭두각시가 아니야'였다. 물론 엄마가 가정형편에 따라, 그리고 나 잘되라고 '해 준' 것인 걸 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우리를 키웠다고 했다. 본인의 최선이 나에게도 최선이었는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그런 엄마를 이해하게 된 것은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아이를 낳고도 엄마와 트러블은 계속되었다. 유아차를 끌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던 엄마는 마침내 김해로 이사를 가버렸다. 진해에 너무 오래 살아서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를 떠나고 싶어 했다는 것을.

부모님이 이사하고 난 후 오히려 좋긴 하다.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해 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독립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것 같다. 혼자서 쌍꺼풀 수술할 병원을 투어하고, 골다공증 약을 타러 마산에 있는 병원까지 잘 오가는 것 같다. 다른 딸들처럼 같이 병원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도 언뜻 내비치셨지만, 나는 모른척한다. 조금은 안쓰러울 때도 있다. 엄마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독불장군 같은 성격도, 동시에 소녀처럼 여린 성격도, 엄마의 본성이자 고유함이다. 몇 달씩 집을 비우는 군인 남편을 만나 혼자서 많은 걸 결정하고 처리하며 남매를 키워내야 했던 환경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한다. 그런 고집스러운 엄마는 가끔 내게 아직도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긴 한다. 아빠와도 사소한 걸로 아직도 다툰다. 그 소리가 듣기 싫을 땐 '에너지가 있으니 뭐라 할 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제 그 에너지는 전투용이 아닌 내수용으로, 자신을 위해 몸에 쌓아두면 좋겠다. 사고 없이 무탈히 운전하며 오가셨으면 좋겠다. 며칠 전 손녀와 얼음땡 놀이를 하며 뛰어다닌 것처럼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지난 16일 창원 동네책방 책방19호실에서 진행된 '우울한 여자들의 살롱' 글쓰기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접은 복주머니. /김수미 작가
지난 16일 창원 동네책방 책방19호실에서 진행된 '우울한 여자들의 살롱' 글쓰기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접은 복주머니. /김수미 작가

◇복주머니 

아이가 나보고 복주머니를 접어달란다. 노란 색종이로 자그마한 복주머니가 만들어졌고 아이는 거기다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밤톨 같은 정수리를 자랑하며 내 앞에서 한참을 그리더니 "엄마 선물이야"라며 준다. 그거 내가 만들었는데? 아이는 주머니처럼 쓰라며 거기다 소중한 것을 넣으라고 했다. 엄마의 소중한 것은 너라고 여기에 들어가보라고 했더니 아이는 앙증맞은 몸짓으로 들어가려는 시늉을 한다. 그 모습이 귀여워 깔깔 웃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아이도 깔깔 웃었다. "복주머니엔 복이 들어 있어 좋은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더니 앉아 있던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 내 머리 위에 텅 빈 복주머니를 뒤집어 탈탈 털어내며 말한다. "좋은 일아, 일어나라." 웃으며 나에게 복을 뿌려준다. 내 마음이 따듯하고 순해졌다. 예쁘고 소중한 찰나였다.

/정리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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