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의 향기] 언론인 전의홍
원고지 한 장 칼럼 25년간 6298회
새파랗던 사회 일침 글쓰기 멈춰

노(老) 언론인은 입원을 앞두고 원고 세 편을 미리 맡겼다. 곧 회복해 차질 없이 연재를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지난 25일 오후 세 편 가운데 마지막 원고를 편집하던 경남도민일보에 부음이 전해졌다. 26일 자 <경남도민일보> '전의홍의 바튼소리'는 필자가 남긴 마지막 원고가 됐다. 이날 오전 편집국 팩스는 다음 날 쓸 '全義弘 전용 원고지'를 수신하지 못했다.

전의홍 선생이 늘 황홀하게 여기던 600자(字) 글 감옥에서 벗어났다. 햇수로 25년 만이다. 향년 85세.

충북 영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일 때 이미 한자 2000자 정도를 읽고 썼다. 그때부터 한자 소리와 뜻을 뒤틀어서 노는 것을 즐겼다.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엿보인 남다른 재주를 귀하게 여기면서도 엄하게 단속했다.

"사람은, 특히 사내는 새파란 가슴으로 살다가 새파랗게 죽을 줄 알아야 한다."

선생은 무거운 가르침을 평생 받들고 새겼다. 그 시절부터 가다듬은 좌우명이 '수분지족(守分知足)'과 '묵거묵거(默居默去)'이다. 분수를 지키며 만족을 알고,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떠나는 삶을 거듭 다짐했다.

경남도민일보와 연을 맺기 전 경남일보, 경남매일, 동남일보에서 일했다. 경남일보와 경남매일에서 교열기자를 했고 동남일보에서 편집부국장까지 맡았다.

언론인으로서 사명은커녕 범인 기준에도 못 미치는 이들이 기자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못 봤다. 기자가 기자답지 않아서 언론이 언론일 수 없었던 시절을 겪었기에 치열하게 취재하고 고민하는 후배들을 늘 격려했다.

2000년 7월 5일 '전의홍의 바튼소리'라는 문패를 걸고 나온 글 제목은 '녀름·여름(夏)·여름(實)'이다. 세태에 대한 날 선 단상에 시조 한 자락을 곁들인 유별난 칼럼은 그렇게 시작했다. 600자 원고지 한 장 분량 칼럼 한 편은 6298회로 끝을 맺었다. 200자 원고지로 셈하면 1만 8894장이다. 조정래 작가가 쓴 <태백산맥> 원고가 1만 6500장이다.

선생은 기상부터 체조, 식사, 독서 등 일상 모든 것을 600자 원고 한 편에 맞췄다. 선생에게 '바튼소리'는 세상을 보는 창이고 세상을 담는 바구니였다.

"난 '바튼소리' 하려고 난 사람 같아요. 힘들어도 계속 써지고 계속 글 생각만 해요. 그래서 병이 나도 회복이 더딘 것 같고, 어떤 면에서 병이 나도 쓰러질 수 없는 이유가 또 '바튼소리' 같아요."

아들 전재형 씨는 입원 중인 선생이 잠시 호흡을 찾은 짧은 순간을 전했다.

"당장 신문사 안부부터 챙겼습니다. 늘 경남도민일보를 자랑스러워했고 이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게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이승환 기자 hwan@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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