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내몰린 이에게 도움을
아무렇게 대해야 할 사람은 없다

제116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이 다가온다. 여성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마음 아픈 사연이 있다. 과거 일선 경찰서 강력계 형사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처음 보는 한 여성이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찾아와 꼬깃꼬깃 접은 메모지 한 장을 내게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유서였다. 거기에는 한 어머니로서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외아들에게 보내는 애절하고도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혼자 몸으로 외아들을 위해 공사장 막노동과 가정부, 청소부, 식당 종업원 등 힘든 일도 마다치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학에 다니는 아들 뒷바라지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한 아주머니의 말에 속아 우여곡절 끝에 성매매 업소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힘없고 나약한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와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한물 간 초로의 동네 건달 두 명이 오랫동안 번갈아 가며 형언하기 어려운 모욕과 폭언, 성폭행을 하고 성매매를 강요해 번 돈까지 빼앗아 갔다. 그러나 약점과 보복이 두려워 말 한마디 못했다. 심지어 주위 사람들도 다칠세라 건달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고,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디다 못해 순찰 중이던 한 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급기야 '왕따'까지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 건달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을 반복해서 당하다 보니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자신은 비록 성매매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아들에게만큼은 정말 떳떳하고 당당한 어머니로 살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또 그것이 첫 꿈이자 마지막 소원이었다며 통곡을 멈추지 않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그녀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더욱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견디기 어려운 억울함을 당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결심한 한 여성의 충격적인 고백을 들으면서, 나는 경찰관으로서 본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법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의무와 양심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앞서 언급한 빛바랜 초로의 동네 건달 두 명 중 한 명이 밤늦은 시간에 필자의 근무지로 찾아와 갖은 인상을 쓰며 "앞으로 밤길 조심하고 잘하라"는 등의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또 "아무런 잘못과 죄도 없는 나를 성매매 여성의 일방적인 거짓말만 믿고 처벌하였다"며 "가만히 두지 않겠다. 죽여 버리겠다" 등의 협박과 함께 행패를 부리기에 지체 없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성매매 여성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유형의 각종 신고에 시달려야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특히 다양한 유형의 진정·투서에 시달리는 등 나 자신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는 깨끗한 여성도 더러운 여성도 없습니다. 그저 여성이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여성은 없습니다." 오늘따라 그 말의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하루다.

/문영호 전 강력계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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