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개혁·외환위기 한국사회 전환 계기
경제 위기 신호 외면 정부 믿을 수 있나

오늘날 한국인 사고방식과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49년 농지개혁과 1998년 IMF 외환위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1944년에는 상위 3% 지주층이 64%의 토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농지개혁 결과 1955년에는 상위 6%의 소유분이 18%로 줄었다. 농지개혁으로 '지킬 것이 생긴 사람'들은 북한군의 남침에 저항했고, 아이들을 낳아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야구 감독들이 잘 쓰는 표현을 빌리면 삶에 있어서 비로소 "계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당시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농지개혁을 주도했던 사람은 독립운동가 출신의 농림부 장관 조봉암이었다. 그는 이승만에 맞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가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져 낙선했다. 종신집권의 걸림돌이 된 조봉암은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이듬해 사형되었다. 처형 전 그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이 박사(이승만)는 소수가 잘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살 수 있는 정치 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에게 패자가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2011년 대법원은 재심을 통해 조봉암의 무죄를 선고했다. 그에 대한 사형 집행이 정적 탄압을 위한 '사법살인'이었음을 인정한 셈이었다.

1949년 농지개혁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면 1998년 '외환위기'는 '헬조선'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개념조차 없어졌고 모두가 '돈'의 엄청난 위력을 느끼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상위 10%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45%를 넘어 50%에 육박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35% 정도였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표현처럼 "무릇 있는 자는 더욱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신자유주의 이념 득세로 직장에서 쫓겨날 위험이 커지면서 이른바 라이선스 있는 직업인 의사·변호사 등으로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이 전 세계 사교육비 지출의 25%쯤 된다고 한다. 한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쏟아부어도 미래에 대한 계산은 서지 않는다. 33년 만에 처음으로 연구개발(R&D) 예산이 15% 삭감되면서 어렵게 박사학위를 딴 이공계 연구원들도 자리를 잃고 있다. 그래놓고도 대통령은 "재임 중 R&D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2023년 제조업 생산은 25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로 중국, 대만, 일본보다 낮은 동북아시아 꼴찌다. 한나라당이 경제 파탄 등을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던 2004년 경제성장률은 5.2%였다. 경제성장률이 일본보다 낮아진 것도 25년 만이다. 주가지수는 전 세계 주요국 증시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역대 최대인 56조 원의 세금이 펑크 났는데도 부자 감세 정책은 변함이 없다. 멍게는 성체가 되어 바위에 자리 잡으면 뇌가 없어진다. 성체는 움직이지 않고 흘러들어오는 먹이만 잡아먹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뇌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도 스스로 생각하는 기능을 잃고 일방적 정보를 사실인 양 믿으며 멍게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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