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취약지 주민들 불만·불편 호소
"크게 다치면 타 지역 병원부터 알아봐"
"시골에서 쓰러지면 끝이라는 생각도"

의대 정원 확대 논의 등 제자리걸음
"의사 단체 목소리만 들으면 안 돼"

지역 공공병원 활용한 대안 제시
"공보의 충원하고 지역 머물게 해야"

‘의료 인력의 도시 집중화 현상으로 농어촌지역이 상대적으로 의료 사각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당장 오늘 아침 신문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이 문장은 22년 전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농어촌 의료체계 붕괴 가속’ 기사 일부입니다. 지역 의료공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꾸준히 사회 문제로 거론됐지만 여전히 마땅한 대책이 없습니다. 지난해 의대 정원 논의와 맞물려 의료 공백 문제가 다시 한번 화두로 떠올랐지만 이번에도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그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의료 취약지 주민들이 떠안게 될 것입니다. 지역 의료 공백 기획 마지막 편에서는 의료 취약지 주민들의 목소리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해결책을 들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22년 전 기사에 등장한 한 시민은 “많이 아프면 마산과 부산의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려 병원 가기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모습은 지금도 다를 게 없다.

경남 응급의료취약지 14곳 중에서도 거창·함양·합천은 사각지대의 사각지대다. 대형 종합병원이 있는 진주·창원·김해·양산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서다. 이곳을 비롯한 의료 취약지 주민은 날로 악화하는 지역 의료 현실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주민 목소리와 지역 의료 공백을 타개할 대안 등을 살펴봤다.

◇원치 않는 타 지역 원정 진료 = 박진홍(61) 거창군 신원면 저전마을 이장은 2019년 겨울 첫눈 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도 이장이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마을 주민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이장을 찾았다.

“80대 할아버지가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지셨다는 전화였습니다. 문제는 갑자기 내린 눈 탓에 집 근처까지 구급차 진입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겨우겨우 모시고 병원으로 옮기는 데까지만 3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병원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 조금이라도 빨리 갔으면 그렇게 가시지는 않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의료 취약지에서는 응급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 면에서 읍으로, 읍에서 다시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다 보니 넘어지면 대부분 골절상입니다. 그러면 거창 안에서 해결이 안 되니 전부 진주나 대구 등 인근 도시로 갑니다. 서울 등 자식들이 있는 연고지 병원으로 가기도 하지요. 이장들은 누가 크게 다쳤다 하면 다른 지역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 실정입니다.”

손병재(61)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이장 역시 의료 공백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는 지역에서는 건강검진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1년에 한 번 받는 건강검진도 진주나 다른 도시에 가서 받아야 하는 현실입니다. 지금은 기본적인 검사를 산청에서 받고 내시경은 다른 지역에서 받는데 그 지역에서 왜 굳이 여기까지 오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는 특히 산간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쓰러지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고 말했다.

“지난해 손가락을 깊게 베여 산청 보건의료원에 갔는데 신경을 다쳤을 수도 있다고 큰 병원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하는 큰 사고였다면 손가락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가락이어서 망정이지 심장이나 머리를 다쳤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국회 앞에서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이 의사 집단 진료거부 관련 여론 조사 및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국회 앞에서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이 의사 집단 진료거부 관련 여론 조사 및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 공백 문제 수십 년째 해결 안 돼 = 정부는 지난해 10월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체계 개편 의지를 보이며 의료 정책 개선을 약속했다. 이후 정부와 의사 단체 등은 지난해에만 23차례 만나 논의했지만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가장 큰 쟁점은 의대 증원 규모다.

현행 의대 입학정원은 3058명이다. 한때 3400여 명까지 늘었지만, 의약분업 등을 거치며 351명이 줄고 2006년부터는 지금 숫자가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정원 확대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반영되지 않았다.

애초 정부는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리는 안을 검토했지만 의료계 반발에 구체적인 수치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 대책을 묶어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스무 번 넘는 논의에도 정부와 의사 단체가 의대 정원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곳곳에서 우려와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해 12월 26일 대한의사협회에 공개질의서를 보내 정말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들이 부족해 근무 여건이 나빠지고 이 때문에 전문의 자격증을 포기한 일반의가 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필수의료 의사가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 논의는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나왔던 이야기"라며 "근데 매번 개원의를 중심으로 한 의사협회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중요한 의료 정책 문제는 의사들하고만 논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금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 다른 외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논의 기구에서 의대 정원 문제를 다루면 된다"며 "하지만 의사단체 입김이 워낙 강하다 보니 정부도 의사협회와만 대화하고 그들 주장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역에서 바라본 대안은 = 의료 공백 문제는 복합적이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거나 의료 취약지에 병원만 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의료 인력 확대와 함께 비정상적인 의료 체계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당장 병원을 짓고 의사 수를 늘릴 수 없는 만큼 응급의료체계라도 효율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남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구급대원은 “한 대학병원 앞에서만 10시간 넘게 대기한 적도 있는데 요즘은 출동 나가는 것보다 환자를 어디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지가 더 큰 고민”이라며 “응급실을 찾으려면 수십 통씩 전화를 돌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라 어떨 때는 콜센터 직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시에서는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서 난리고 의료 취약지에서는 중증환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게 문제”라며 “의료 취약지에서 가까운 대형 병원까지는 기본 1시간 정도 걸려 난감하다”고 말했다.

의료 정책 전문가들과 도내 의료 취약지 의사들은 공공의료 확충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등으로 의료 인력이 늘어난다면 지역 여건에 맞게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영철 통영적십자병원장은 “공중보건의 같은 경우 지역 공공병원에 필수적인 인력인데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라며 “당장 지역에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확보한 의료 인력을 지역에 머물게끔 유도하거나 일정 부분은 강제할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 원장은 “지역에 의사들이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의대 졸업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지역 공공병원에 의무 복무하게끔 하는 지역 의사제가 필요하다”면서 “지역 안에서는 공공병원 병상을 늘리고 경영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끝>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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