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작품 1300여 점 이상이 보관돼 있다. 전시 작품을 구매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도내 작가 작품을 사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운 건 도대체 수장고 안에 어떤 작품이 들었는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립미술관 학예사를 통해 수장고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통해서지만, 이렇게라도 하면서 수장고 관리 문제에서부터 도민들과 작품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박생광 '십장생' 1980년대, 지본 채색, 134.5×136cm./ 경남도립미술관 

박생광은 1904년 진주시 망경동 15번지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진주제일공립보통학교를 다니며 처음 미술을 익힌 그는 진주농업학교를 다니다 1920년 17세의 나이로 일본 교토의 다치카와세이운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学院)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3년간 수학하고, 1923년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서 ‘근대 교토파’의 화풍을 익히게 된다. 

메이로미술전(明朗美術展), 신미술인협회전(新美術人協会展), 일본미술원전(日本美術院展) 등에 출품하면서 일본에서 활동하던 그는 1944년 말 진주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45년 이후 한국화를 중심으로 하는 백양회(白陽會) 창립 구성원으로 활발히 활동했으나, 광복 후 국내 미술계가 일본화풍에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활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 박생광은 예술전반에 대한 관심이 컸고 예술이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49년 이용준, 이경순, 오제봉, 설창수, 박세제 등과 함께 진주에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을 결성하고 전국 최초의 종합예술제인 ‘영남예술제’를 주도적으로 개최한다. 지금도 이 예술제는 ‘개천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진주에서 계속되고 있다.

박생광은 1960년대 후반 잠시 서울에서 강의를 하면서 민속적 소재를 그림에 도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이후 일본에서 세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굵고 넓게 퍼지는 먹효과를 바탕으로 하는 수묵화를 벗어나, 1980년대부터는 단청이나 고구려 고분벽화, 탱화, 민화 등에서 보이는 감청(紺靑), 주(朱), 황(黃) 등 자연스러운 원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생광 스타일이 구축된 것이다. 요컨대 그는 생을 마감하기 5년 전의 왕성한 활동을 통해 무속, 불교, 민화, 역사 등을 주제로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독자적인 한국적 채색화’를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박생광의 '십장생'(1980년대)의 주제는 학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종묘로 보이는 기와 지붕을 그림 하단에 배치하고 화면의 중앙과 상단에는 학 두 마리가 자리 잡고 있다. 바탕에는 고가구 장석에 주로 사용되는 구름 문양이 중심을 잡고 있으며 해와 달이 각각 위아래에 위치해 있다. 원래 십장생도는 해, 구름, 산, 물,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복숭아, 불로초(영지) 등 10가지의 소재로 구성된 그림인데 박생광의 '십장생'은 학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 중앙부에 있는 두 마리 학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양과 음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원형을 만드는 태극 형상이 떠오른다. 오른쪽 학의 몸통이 청색이고 왼쪽 학 대가리가 붉은 색인 걸로 봐도 박생광은 이 학의 형상을 통해 불로장생의 기원은 물론 우주만물의 근원을 시각화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형식적으로는 역시나 오방색이 중요하다. 오방색이란 청, 적, 황, 백, 흑 다섯 가지의 색을 가리키는 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확인된다. 박생광의 '십장생'의 색상 구성을 보면 이 다섯 오방색이 모두 사용됨을 확인할 수 있고, 오간색(자, 홍, 유황, 녹, 벽색) 중 녹색이 추가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

※ 참고문헌
1. 『경남미술작가이야기』, 이규석, 최태만, 정종효 공저, 불휘미디어, 2014
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정보, https://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List.do
3.  「GAM 컬렉션」, 『월간경남』, 김재환, 경남신문, 2020년 7월호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