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운동인으로 산 허승민 씨
독서에 빠져들며 글쓰기 관심
엄마 간병하며 쓴 메모 토대로 저술
"묵은 감정 글로 풀 때 후련"

"제가 책을 냈는데, 혹시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떨리는 목소리였다. 전화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이며 용기를 냈을까. 

"네, 일단 책을 보내주세요."

그렇게 읽게 된 <두 번째 인생은 없다>는 창원 북면초등학교 기계체조 지도자(코치) 허승민(35) 씨가 쓴 책이다. 

허승민 씨가 쓴 두 번째 인생은 없다 표지
허승민 씨가 쓴 〈두 번째 인생은 없다〉 표지.

◇엄마, 엄마 우리 엄마 = "12월 30일 새해가 보고 싶다던 엄마는 눈을 감으셨다."

책에는 주로 엄마가 돌아가시고 간병 생활을 되돌아보며 적은 글이 담겼다. 건강하던 엄마가 어느 날 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구나. 전문가 중에 최고의 전문가인 걸 알면서도, 혹여나 잘못될까 의사가 못 미덥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린, 막연히 의사를 믿어야 한다."

항암 방사선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는 겪어본 이들은 알 테다. 완치될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뿐이다.

"집으로 돌아가 살아생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해야 했다. 절약하고 악착같이 모으는 성격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정리하면서 얼마나 아끼고 버리지 못했는지, 오랜 세월이 묻은 바래진 옷, 몇 번 입지 않은 듯한 유행이 다 지나버린 깔끔한 옷, 집안 여기저기 엄마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하자. 어쩌면 뻔한 주제인데, 글솜씨가 나쁘지 않다. 글은 주제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솔직함으로 감동을 주느냐, 얼마나 깊은 생각으로 생각거리를 던져 주느냐가 중요하다. 솔직함과 함께 담담한 문장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래서 거부감 없이 공감할 수 있다.

〈두 번째 인생은 없다〉 저자 허승민 씨. /이서후 기자

◇책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다 = 허 씨가 엄마 암 투병으로 갑자기 글을 쓰게 된 건 아니다. 그 전에 이미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써 왔다. 원래는 운동선수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자서전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가 병원에 있을 때 곁에서 한두 문장씩 적어둔 걸 토대로 글을 써보기로 했고, 그게 이번 책의 주 내용이다.

허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엘리트 체조선수로 운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지도자로 활동한 지도 벌써 10년째다. 운동선수로, 지도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가 무엇을 계기로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됐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라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뭔가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운동 말고 다른 세상이 진짜 궁금했어요. 지금은 가정이 있다 보니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도 쉽지 않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실질적인 경험은 못하더라도 간접경험이라도 할 수 있는 책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무작정 서점으로 달려갔어요." 

원래 그에게 책이란 어려운 말이 잔뜩 쓰여 있는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독서도 그런 어려운 내용을 읽으며 지식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점에서 제법 어려운 책들을 골라 들었지만, 기초 지식이 부족한 그에게는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러다 발견한 게 에세이다.

"처음 본 책은 <나는 간절함을 믿는다>(황목치승 지음·2017), <마이 스토리>(박지성 지음·2015)였어요. 같은 운동인이 쓴 책이라 공감이 많이 되었달까요?"

〈두 번째 인생은 없다〉 저자 허승민 씨가 지도하는 창원 북면초교 정수은 양이 올해 전국소년체전 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을 땄다. /허승민

◇글을 쓰며 성찰을 시작하다 =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도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에세이와 소설을 번갈아 읽으며 틈틈이 생각들을 정리했다. 글은 주로 집에서 아이들이 잠든 후 밤부터 새벽까지 쓴다. 글을 쓰는 방법도 인터넷을 통해 배웠다.

"문장을 너무 길게 쓰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더라고요. 그래서 짧게 쓰는 연습을 많이 했죠."

글을 제대로 쓰는 이들은 보통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을 잘한다. 이를 '성찰'이라고 한다. 허 씨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성찰하는 습관이 들었다.

"글쓰기의 좋은 점을 딱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 자신과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려고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특히 가슴에 담고 있던, 오랜 시간 묵혀둔 감정과 기억을 글로 잘 풀어내면 후련한 마음이 듭니다."

스스로 돌아보기 시작하면 주변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이 전에는 길을 걸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지금은 제법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하게 됩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옛날에는 대충 봤는데 지금은 주의 깊게 보게 되더라고요. 사람마다 다 사연이 있겠구나 생각하면서요."

〈두 번째 인생은 없다〉 저자 허승민 씨가 자신의 책을 엄마 묘지에 선물로 놓아두었다. /허승민
지역 서점에 자신의 책 〈두 번째 인생은 없다〉를 입고한 허승민 씨. /허승민

◇엄마 무덤에 선물로 놓은 책 = 글이 쌓이니 당연히 책도 내고 싶었다. 

"제가 운동인으로 큰 성공을 못 해서인지 제 이름으로 된 업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자서전같이 저의 운동선수 시절을 쭉 정리해 책으로 내고 싶었어요. 책 내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고 책 쓰는 방법을 담은 책을 읽기도 했어요. 결국은 엄마 이야기를 담아 책을 냈는데요. 쓰면서 많이 울었어요. 진짜 이 책은 자식한테 물려줄 수도 있고, 저한테는 보물이에요."

책을 내고 얼마 후 그는 제자들을 이끌고 울산에서 열린 제52회 전국소년체전에 참가했다. 울산으로 가기 전 그는 엄마 묘지를 찾아 책을 놓아뒀다. 그러면서 엄마한테 우리 아이들 이번에 금메달 좀 따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 기도가 통했을까, 이번 소년체전에서 경남 체조 선수들은 30년 만에 최고 성적을 올렸다. 허 씨가 지도한 북면초교 아이들도 금메달을 땄다. 허 씨로서는 더없이 기쁜 나날들이었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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