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형편 어려웠던 어릴 적
고교 진학도 교사 꿈도 접어
간호조무사 일하며 주경야독
영유아 보육 전문가로 30여 년
저술 활발·안전문화 확산 기여

'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던지면 너는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삶의 어려움 앞에서 한 번쯤 되새겨 볼 만한 미국의 격언이다. 어떤 이는 삶에 주어진 레몬을 눈살 찌푸리며 애써 외면하지만 다른 어떤 이는 그 레몬으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임미정은 숙달된 레모네이드 제조자이다. 영유아 보육 경력 30년 이상의 전문가에 교육학 박사, 대통령 표창 수상자, 한국 영유아 대표, 창원대·문성대·가야대 외래교수, 무려 9권의 공저 및 단독 저서 저자. 이외에도 그의 이력은 한참을 더 나열해도 모자란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일들을 해내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어 쓸 수 있나 존경심마저 느껴진다. 평탄히 살아와서 성공 가도를 달렸으리라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일 뿐, 삶은 그에게 수없이 많은 레몬을 던졌다. 

1959년 전라북도 고창 가난한 농가에서 3남 4녀, 7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의 애매한 자리, 많은 형제 틈에서 배려심 많고 속 깊었던 딸은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집안 형편상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 힘들었던 어머니는 결국 고심 끝에 그를 남의 집 수양딸로 보내려고 생각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수양딸로 가면 공부시켜준다고 권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남의 집 딸이 되는 것은 싫었다.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집에서 부모님 심부름을 하면서 보내다가 마을 이장의 권유로 고등공민학교에 진학했다. 비정규 학교인 고등공민학교에 다니다가 중학교 2학년 말에 고창여중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학교에 못 가서 부러워만 하던 친구들과 함께 보낸 1년여의 중학 시절이 그에겐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두 살씩 터울이 지는 동생들 생각에 고등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결국 교사의 꿈을 접어야 했다. 

김미정(가운데) 슬기어린이집 원장·작가는 저술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공저와 단독 저서로 9권을 펴냈다.
김미정(가운데) 슬기어린이집 원장·작가는 저술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공저와 단독 저서로 9권을 펴냈다.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전주의 작은 개인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간호조무사 자격을 얻었다. 병원 근무를 하면서도 그의 꿈은 언제나 공부였다. 공주에 있는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서 주경야독하면서 방송통신고등학교와 공주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했다. 곧이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그 과정에서 결혼하여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도 학사 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1985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창원에 와서 평범한 주부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고 난 뒤 1993년 3월 전공을 살려서 어린이집 원장이 됐다. 어린이집이 다소 안정되자 다시 배움의 욕구를 느껴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사회복지학 석사학위와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년간 문성대학교, 가야대학교, 창원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보육 교직원 직무 교육 강사 활동도 했다. 그를 움직이는 힘은 아마도 열망이었을 것이다. 삶에서 가장 강하게 지녔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그를 배우고 익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보육 현장에 필요하다 싶으면 무엇이건 배웠고 전문가의 경지에 올랐다. 그렇게 배운 것들은 모두 나눔과 베풂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장기조직기증원 생명나눔 강사, 자살예방센터 생명 존중 전문 강사, 영유아 놀이 지도 강사, 아동학대 예방 교육 강사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창원시육아종합지원센터 운영위원장, 창원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 영유아 분과장 등 그가 일해왔던 다양한 분야라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인간 존중이라는 맥락에서 하나로 묶인 것이었다. 

이런 열정은 강의만이 아니라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2010년 학지사에서 <0, 1, 2세아 영아 보육 프로그램>을 공저한 것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공동, 또는 단독으로 참여했던 저서가 무려 14권에 이른다. 주로 보육 관련 도서들인데 특히 2018년 학지사에서 발간된 단독저서 <내 아이랑 뭐 하고 놀지?>는 2018년 세종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종 도서는 한국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선정하는데 해마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 중에서 우수 도서를 선정, 국내의 도서관, 공공 단체 등 각 기관에 배포하는 사업이다. 세종 도서로 선정됐다는 것은 콘텐츠의 우수성을 인정 받았다는 이야기라 작가 개인에게는 큰 영광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저술 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그는 책 쓰기에 관한 자기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보 작가의 글 감옥 탈출기>를 써서 글쓰기와 지식을 정리하는 방법을 나누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 분야 중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곳은 전문 분야인 영유아 안전 관련 분야이다. 2012년 우리 지역에서 두 건의 영아 돌연사가 발생했다. 이런 사고나 돌발 상황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영·유아 보육 현장에 종사하는 지인들과 뜻을 모아서 경남 영유아안전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2016년 4월에 설립한 경남영유아안전문화연구소에서 초대 회장을 맡아서 2022년 1월, 3대 회장까지 역임하면서 그는 안전사고 예방과 안전 문화 운동을 전개했다. 영유아, 보육 교직원, 학부모, 조부모 대상의 안전교육과 가정 및 지역사회와 연계해 안전 동요 대회, 교통안전 릴레이 챌린지, 재난 안전 체험 교실을 개최하고 안전 상황극을 만들어 공연하는 등 안전에 관한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특히 제1회 경남 보육 교직원 심폐소생술 경연대회를 기획한 일은 주변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영유아 안전 동요대회를 마치고.
영유아 안전 동요대회를 마치고.

안전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이므로 어느 개인이나 한 단체만의 힘으로 절대 확보할 수 없다. 그는 협력의 필요성을 확고히 느꼈고 실천했다. 안전 전문성 향상을 위한 자체 아카데미를 개최하는 한편으로 타 기관과 연계 노력도 함께 기울였다. 경남안전모니터봉사단, 대한적십자사 경남지부 등 도내 10곳 이상의 기관과 연계해 영유아 안전사고 예방과 안전 문화 확산에 이바지했다. 

그는 안전 문화 확산만이 아니라 나눔의 실천에도 아낌이 없다. 영유아안전문화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최근의 튀르키예 지진, 포항 지진 피해, 울진 산불 피해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성금과 성품을 기탁했고 창원시에도 불우이웃돕기 성금과 단독저서 <내 아이랑 뭐 하고 놀지?> 100권, 200만 원 상당의 도서도 기증했다. 이외에 개인적인 후원단체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올해는 특별히 그에게 의미가 있는 해이다. 1993년에 설립한 슬기어린이집이 개원 3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오직 아이들을 바라보며 달려온 세월이었지만 그 세월 동안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을까. 크고 작은 개인적인 어려움이 닥쳐올 때마다 맞서서 이기고 견뎌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급격한 저출생이다. 이에 따라 이제는 아무리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원을 운영하려고 해도 돌볼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어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집이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 오랫동안 보육 현장에서 함께 일해온 동료들의 어린이집이 하루가 멀다고 폐원 소식을 전해 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보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키우고 있다. 마지막 한 명의 아이가 남을 때까지 유·아동 돌봄을 천직으로 여기고 실천할 작정이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닥쳐올 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배움의 열망으로 가득 찬 채 주경야독하던 그 옛날의 어렸던 간호조무사를 가만히 토닥인다. 그동안 충분히 잘 해왔다고,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시간도 여전히 잘 해낼 것이라고. 

삶은 아직도 가끔 쓰디쓴 레몬을 들이밀곤 한다. 하지만 그는 레몬 속에 깃든 새콤함에 달콤함을 가미해 어우러지게 하는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어왔다. 나눔과 베풂으로 살아왔던 한평생, 수많은 아픔과 좌절이 있었지만, 병아리처럼 예쁜 아이들과 보낼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이 귀하고 고맙다. 세상의 변화가 그러하면 이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부디 이 나라의 내일을 위해 젊은이들의 출산율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예순을 넘긴 지금의 간절한 소원이다.

그가 만든 레모네이드 한 잔 앞에 두고 가만히 귀 기울이는 봄날 오후가 저물어 간다. <끝>

/윤은주 시민기자(수필가·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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