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 보길 바라는 사람들
일자리 통계 이전에 노동 가치 새겨야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를 나흘 뒤 주말에 서둘러 봤다. 지난해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돼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국내에서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아 보인다. 창원에서는 상영관이 적고 하루에 2~3번밖에 편성되지 않아 조조영화 시간대에 겨우 볼 수 있었다. 2주가 지난 현재 멀티플렉스에서는 사라졌고, 마산 독립예술영화관인 '씨네아트 리좀'에서 볼 수 있다.

영화는 대기업 하청업체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소희의 죽음을 다룬다. 2017년 1월 전북 전주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뤄지며 적잖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이 사건을 몰랐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 복잡해진 감정으로 영화에 몰입했다.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다 결국 한 장면에서 감정이 폭발했다. "일은 할만해? 또 욱하면 누구한테라도 말해. 말해도 돼." 소희를 죽음으로 내몬 원인을 좇던 형사 유진이 소희 선배인 태준에게 건넨 말이다. 공장에서 일하던 태준은 이제 택배 일을 한다. "고맙습니다"라며 울컥하는 태준 모습을 보니 나도 북받쳤다. 소희는 말할 곳이 없었구나! 고립감은 청춘을 앗아갔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날인 지난 10일 <경남도민일보> 1면 머리기사로 '취업 강점에 도내 특성화고 신입생 충원율 크게 올라'라는 소식이 실렸다. 올해 경남지역 특성화고 36곳 신입생 충원율이 90%를 웃돌았다는 내용이다. 출생률 감소로 학생 수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6년 만에 오히려 반등했다니 의미가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뿌리 깊은 학벌주의가 조금씩 무너지는 현상이길 바라는 확대해석까지 하며 반갑게 읽은 기사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기사를 다시 읽으니 머릿속이 또 복잡해졌다. 충원율은 곧 취업률을 의미했다. 학생들이 관심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직업교육의 강점보다 취업률이라는 통계 수치에 내몰리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특성화고에 대한 각종 지원금과 장학금 혜택은 취업률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영화 속 소희처럼 현장 실습에서조차 부당한 처우와 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실이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특성화고 학생·학부모·교사를 비롯해 교육청, 교육부로 이어지는 모든 교육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어"라는 대사에서 과연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특성화고뿐 아니라 대학들도 취업률에 전전긍긍하는 현실이다. 지역소멸을 우려하며 청년인구를 붙잡으려 일자리 창출 등 각종 청년정책을 앞다퉈 내놓는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정치인들도 보길 권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노동정책과 직결된다. 노동 가치가 존중 받고, 노동자 권리가 보장될 때 그것이 진정한 노동개혁이다. 대통령에게도 강권하고 싶다. 다음 말고 지금 당장.

/정봉화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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