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 갖춰 거리 좁혀가는 과정 중요
뜻대로 되지 않는 것-불통 구별해야

딸은 고작 세 살이었는데 의사 표현이 유난히 분명했다. 또래보다 쓰는 단어가 다양했고 발음까지 또렷했다. 그렇게 기억했고 최근까지 그런 줄 알았다. 얼마 전 아내가 보여 준 동영상 속 같은 딸은 기억과 전혀 달랐다. 한참을 옹알거리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내가 깔깔거리면서 말했다.

"분명히 저때는 다 알아들었는데, 발음 진짜 좋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언론사 내부 소통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에서 '뉴스룸 세대갈등 토크쇼'라는 기획을 3부에 걸쳐 진행했다. 선후배 기자들을 앉혀놓고 격의 없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대견했다. 업무 시간이라 방송을 진득하게 볼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명제는 쉽게 확인했다. 소통은 언제 어디서나 어렵고 또 어렵고 몹시 어렵다.

따지고 보면 소통은 원래 어렵다. 뺨을 맞으면 볼이 아프고,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르는 것과 같다. 스스로 소통이 어렵지 않거나 잘된다고 여긴다면 두 가지 경우를 의심하면 된다. 자기 혼자 주야장천 얘기하거나 주변에서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나.

언론사 내부 소통 문제를 꺼냈지만 좁게는 배우자, 부모·자식, 친구끼리도 마찬가지다. 넓게는 회사, 단체, 지역, 국가 내 소통은 어떤가. 도대체 쉬운 소통이라고는 없다.

소통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과 닮았다. 간절한 송신과 간절한 수신이 주파수가 맞아야 비로소 시작한다. 서로 주파수를 맞추겠다는 간절함이 없다면 애초에 소통하기는 글러 먹었다고 봐야 한다. 딸 옹알이를 형태소 단위로 이해하는 부모와 13년 뒤 한마디도 알아먹지 못한 부모 차이는 단지 간절함뿐이다.

주파수만 맞췄다고 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화는 늘 섬세할 수 없기에 상대 선의를 이해하려는 훈련이 필요하다. 애매한 상대 표현을 오해 없이 정돈하기까지 필요한 인내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같은 밀도로 언어를 선택하는 수고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공적인 주제는 공적인 언어로, 사적인 오해는 사적인 언어로 맞추는 것을… '격식'이라고 하자.

무엇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과 불통을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 내 사정을 잘 봐주면 소통이고 봐주지 않는다고 불통이 아니다. 소통은 서로 극복하기 어려운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거리를 거부감 없이 가능한 만큼 좁히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게 나온 결과를 서로 흔쾌하게 받아들이는 차원 높은 관계 기술이다. 어려운 게 당연하며 어려워야 소통이다.

그러니까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소통을 아주 잘할 뿐 아니라 소통이라는 게 아주 쉽고 잘된다고 여길 게 분명하다. 이유는 '따지고 보면 소통은 원래 어렵다'부터 다시 읽으면 되겠다.

/이승환 뉴미디어부장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