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에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이 연재된 적이 있다. 그중 함양 편에서 운곡리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바쁜 나날 속에 몇 년이 흐른 가을 드디어 찾았다. 과연 엄청나게 크기도 하고, 그 자태가 너무나 당당해서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나무였다. 한 번 가보고 난 뒤에는 단풍이 들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 때가 되면 생각이 나 몇 번을 더 다녀왔다.

한 번은 어르신이 손자·손녀를 포함한 가족과 왔기에 "자주 오시는 모양입니다"라고 인사했더니 "어릴 적 건넛마을에 살았는데, 소풍도 자주 왔었고, 지금은 진주에 살지만 가족과 같이 나들이 삼아 왔다"고 했다. 여기 오면 가족 모두가 좋아하고, 기분 전환도 된다고 은근히 자랑하셨다.

은행나무는 지구 상에 살아남아 있는 식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나무화석이 발견되고 있어 화석 식물로 불린다. 은행나뭇과에는 오직 은행나무 1속, 1종만이 있어서, 형제는 물론이고 사촌팔촌도 없이 혼자서 외로이 오랜 세월을 사는 나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중에서도 은행나무가 많은데 이 나무도, 그중 하나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변고와 신비스러운 이야기까지 더해져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수호목으로 여기고 소중히 보호하고 있다.

운곡리 주변에는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이 많아 여행의 매력도 있다. 계곡 한가운데 갈라지는 물줄기 속에 태연히 자리 잡아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거연정, 소박한 풍모와 단아함에서 학자의 풍모가 느껴지는 군자정, 물살이 깎아놓은 바위와 풍류가 느껴지는 동호정, 거대한 바위를 풍경 삼아 깔고 앉은 농월정에서는 전국시대 제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했을 때 책략가 노중련의 계략으로 나라를 구했는데, 자신은 병자호란에서 나라를 구하지 못해 은거하면서 노중련의 지혜를 부러워하고, 자신의 역량 부족을 한없이 부끄러워했을 박명부를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 있다.

언젠가 주말에 운곡리 은행나무를 만나러 가고자 결심하고 나섰다. 가는 도중 혼자 심심하지 않으냐는 아내의 전화가 왔고 이에 "은행나무를 만나러 함양에 간다"고 했다. 1000년 넘은 이런 나무는 구경을 가거나, 보러 간다는 표현보다 중요한 사람과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것처럼 '만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단풍이 멋있게 들면 운곡리 은행나무를 만나러 가야겠다. 아니다. 이번 주말에 당장 가서 1000년을 산 나무의 강인함과 꾸미지 않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지혜를 배우고 와야겠다.

/한동구 ㈜MH에탄올 안전보건팀 이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