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세상 톺아보기 (5) 프레지던트 윤의 잉글리시 러브에 관한 고찰

먼저, 이 글은 프레지던트 윤과 그를 팔로우하는 피플에게 데디케이트하는 펄포즈로 라이팅하였음을 밝힌다.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지도부 오찬 회동에서 용산 시민공원 이름을 두고 한 발언이다.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이 발언은 영어 사랑을 넘어 그의 영어 숭배를 보여주는 일화로 최근 들어 자주 오르내린다. 그가 애정해 마지않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영어 실력이 남달라 발탁했다고 했으며, 기자와의 대화에서는 불필요한 영어 단어들(거버먼트 어토니, 메가포트, 휴먼 캐피털, 도어스테핑 등)을 남발하여 다소 기괴한 느낌까지 주었다. 심지어 '도어스테핑'은 본래 뜻과 전혀 달랐다. 몇몇 언론사는 그의 언행을 '영어 지상주의' 혹은 '언어 사대주의'로 명명하며 비판하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런 언행은 단순히 못마땅하고 천박하게만 볼 것이 아니다. 국가 원수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니 그 속에 있는 심리적 기제를 제대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영어 단어 남발하고 의미 혼동
'언어 사대주의' 보여 비판 받아

◇매우 한국적인 언어 사대주의 = 사대주의는 한 국가가 주체성 없이 강한 국가에 의존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따라서 '문화 사대주의'란 자기 문화를 경시하고 다른 문화를 동경하며 무조건 추종하는 태도를 뜻한다.

언어는 문화의 거울이라는 말이 존재하듯 문화의 핵심 구성 요소인 언어는 그 나라의 역사와 세계관, 정서, 사고방식 등을 총망라한다. 윤 대통령이 보인 '문화 사대주의', 더 자세히 '언어 사대주의'는 그가 좋아하는 영어로 어떻게 표현될까? 영어사전에서 사대주의를 찾으면 toadyism, flunkyism, sycophancy가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들은 앞서 설명한 뜻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다. 해당 단어는 '아첨하다', '아부하다'라는 뜻에 가깝다. 문화 사대주의의 경우 타민족 중심주의를 뜻하는 xenocentrism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다른 문화와 사회의 관행에 대한 선호를 뜻하며 이민자들이 겪는 문화적 가치관의 전향과 혼란에서 생겨난 단어라 완벽히 대응되지 않는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자국의 것을 평가절하하고 타국의 것을 숭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이라는 것이다. 고유한 글과 말을 갖고 있는 나라가 어디 흔한가? 또 근·현대 역사를 주도했던 서양의 기준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무조건 영단어를 쓰는 것이 언어 사대주의를 나타내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말과 정확하게 호응하지 않는 단어는 그대로 쓰는 것이 오히려 오해를 줄일 수 있다. 그 자체가 고유품사가 되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는 단어라면 더 그렇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언사가 이 경우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식민지적 사고방식 그리고 열등감 = 윤 대통령이 보여준 언어 사대주의에 호응하는 영단어는 없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정신세계를 반영한 영어 표현은 있다. 'colonial mentality', 직역하면 식민지 정신 혹은 식민지적 사고방식이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식민주의 심리학의 토대를 정립한 프란츠 파농이 만든 개념으로, 식민화의 결과 사람들이 민족적 또는 문화적 열등감을 내면화한 태도를 뜻한다.

식민 지배를 겪은 민족은 식민지 본국의 문화적 가치가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신념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식민지적 사고방식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 민족에게서도 또렷하다. 근현대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이 개념을 체화하여 자신들의 경제적·사회적 안위를 도모한 수많은 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식민지적 사고방식의 핵심은 '열등감'이다.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은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이며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로부터 유래한다. 심리학에서는 열등감을 '실제 또는 상상 속의 신체적 심리적 결핍'에서 비롯된 능력 부족과 불안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아들러는 열등감이 생기는 이유로 어린 시절의 경험을 강조한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인정욕구를 충족하지 못했거나 경험과 감정이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한 경우, 아이는 자신의 가치가 남들보다 낮다는 개념을 학습한다. 또한 자신이 세운 이상과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할 경우 좌절과 함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어린 시절 깊이 스며든 열등감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심리 낳아

◇열등감 방어의 부정적 예 = 열등감은 매우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때문에 다들 본능적으로 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방어 기제를 동원한다. 아들러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열등감에 대한 대표적인 부정적 보상 심리로 보았다. 자신이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배제하고, 굴욕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억압적으로 대하며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보다 더 높은 위치,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힘과 우월감에 대한 욕구와 집착이 생겨나는 이유다. 아들러는 이러한 권력에 대한 욕망이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에게는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한다.

열등감의 또 다른 방어 기제로는 '타자화'가 있다. 타자화는 특정 대상 또는 그룹을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취급하거나 분리하는 것을 뜻한다. 타인의 열등함을 부각해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제아무리 천황폐하 만세를 외쳐도 일본인이 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조선인을 타자화한 민족반역자들을 떠올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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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의 탄생 = 높은 열등감은 반드시 낮은 자존감을 동반한다. 그리고 낮은 자존감은 공격성으로 연결되기 쉽다. 이 공격성은 약자에 대한 공격성을 말한다. 프란츠 파농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강한 힘에 굴복하고 약자에 대한 공격성을 키운다고 말한다.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는 것처럼 말이다. 아들러와 파농의 이론을 종합하면 높은 열등감→낮은 자존감→약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최종적으로 가 닿는 곳은 바로 '권위주의'다.

대권 후보자들의 심리를 분석한 것으로 유명한 김태형 심리학자는 당시 윤석열 후보를 상징하는 심리적 기제로 권위주의를 꼽았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성인이 된 이후에도 무자비한 체벌을 당했던 경험, 사법시험을 9수 끝에 통과한 이력은 무력감과 열등감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런 후 검사가 되면서 검찰 권력을 등에 업고 무한질주를 거듭하는 동안 그가 드러낸 행태는 당연하게도 권위적이었다고 회고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한 사람의 과거 이력이나 심리학 이론을 알지 못해도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을 보면 권위형 여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자신보다 어려보이거나 사회적 위치가 낮다고 판단되는 이에게 거리낌 없이 반말을 사용하고, 삿대질을 하며, 자신의 의견과 다를 경우 쉽게 윽박지르는 태도는 취약한 자존감과 내면에 깃든 불안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이 지니는 무게감 감안
한국어 세계적 위상 드높여야

◇마음과 생각을 탈식민화하자 = 누구나 크고 작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갖는 열등감의 무게와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갖는 열등감의 무게는 차원이 다르다.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한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의 열등감을 직면하고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문화강국이 아닌가? 더 이상 빌보드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것이 새롭지 않고, 전 세계인들이 우리 콘텐츠를 즐기는 일이 낯설지 않다. 세계 유수 대학들이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기 위한 학과를 개설한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프레지던트 윤에게는 아직 이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우리 말은, 우리 글은, 우리 문화는 아직 멋이 없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구연수 시민기자(심리학 작가)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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