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있던 어린시절 겪은 2030
대화로 아이 키우며 위로 받아

최근 들어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금쪽이'라는 신조어 아닌 신조어를 심심찮게 마주한다. '금쪽이'는 한 TV 프로그램 제목인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따 온 말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금쪽이'라고 부르면서 파생되어 번져나갔다. 현재는 아이가 아니더라도 '철이 없는 사람', '아이처럼 장난기가 많은 사람' 등 더 넓은 범주에서 사용되고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전문가가 아동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프로그램으로, 과거 인기 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포맷이 유사하다. 다만 주목해 볼 만한 부분은, 과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달리 <금쪽같은 내 새끼>는 부모 세대도, 그렇다고 어린 자녀 세대도 아닌 2030세대의 눈길을 강하게 끈다는 점이다.

변하고 발전해가는 교육관 덕에 지금은 아이의 문제 행동을 '아이 탓'만 하지 않고, 보다 더 성숙하고 섬세한 방법으로 원인을 분석해, 아이와 부모가 더 큰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문제 행동을 교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방영되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그때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당시에는 매를 들거나 집 밖으로 아이를 쫓아내는 훈육 방법이 흔했고, 울고 떼쓰는 아이는 '아이가 문제'라고 보는 사람도 많았던 시대다. 체벌을 지양하고, 대화를 통해 훈육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하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러한 변화 위에서, 지금의 2030세대는 2000년대에 아동,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2030세대가 <금쪽같은 내 새끼>를 찾아보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체벌이 이상하지 않았고 육아와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와 고민이 부족했던 시기에 자란 아이들이, 대화를 기반으로 한 훈육을 기본으로 여기는 시대에 어른이 되었다. 그들은 영상 속에서 문제아로 그려지는 아이들을 마냥 못마땅하게 보지도 않고, 그런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부모를 무조건 한심하게 보지도 않는다. 부모와 자녀 양쪽을 다 100%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양쪽 모두에게 일정 부분 공감하며 약간의 연민과 그보다 많은 응원을 보내고 싶어한다.

그 가운데에서 이들은 자신의 유년기에 대해 위로를 받는다고 느낀다. 어릴 적 혼나면서 겪었던 성장통에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과 함께 부모교육이 부족했던 시기, '부모가 처음인 부모' 아래에서 자라며 알게 모르게 받았던 상처와 그 속에서 체감했던 속상함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성장통의 원인이 어렸던 자신에게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는 위로는, 희미한 기억 속 이제는 복합적으로 섞여버린 어린아이의 옅은 상처를 쓰다듬어 준다. 마침내, 어릴 적 자신을 위로해주는 과정에서, 이제 어른이 된 현재 자신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나이의 그 당시 부모를 이해하고, 어쩌면 조금은 안쓰럽게 여기며 보듬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라서 울고, 떼쓰고, 감정을 쏟아내듯 표현하는 것이고, 우리는 모두 그러한 과정 속에 자라왔다. 말 안 듣는 아이, 사고치는 아이를 금쪽이라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 어려서 금쪽이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다. 이는 '결국 다 똑같아' 같은 푸념이나 자조가 아니다. 겪었기에 더 큰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금쪽이는 자라서, 아이들을 '금쪽같이' 여기는 법을 알게 된다.

/정민송 직장인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