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혼자가 편한 주인공 진아
옆집 남자 고독사 계기 변화
인간 관계·연대감 의미 고찰

정책의 큰 꼭지를 보면 사회가 읽힌다. 지난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총 일곱 장의 투표용지만큼이나 많은 양의 공보물을 봐야 했다. 이번엔 특히 1인 가구 정책의 비중이 늘어난 걸 체감할 수 있었는데, 늘어난 분량만큼 질적으로도 유효한 내용이었는지는 회의적이었다.

어쩌면 1인 가구 정책들이 표면적으로만 다뤄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이나 성별, 직종, 기혼 여부, 자녀 유무 등 대부분의 인구통계 특성들은 그 분류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에 교집합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1인 가구는 패턴이 없다. 경제적 독립 상태인지, 일시적인지 영속적인지, 다인 가구의 전 단계인지, 상실에 의한 독거인지 정도로만 나누어도 수없이 다양한 모양으로 삶이 분류된다. 때문에 1인 가구의 개념은 사회적으로 합의를 이루기 어렵고, 정의되기에 앞서 '사건'으로 화두에 오르며 정책의 양과 질 사이에 괴리를 만든다.

'사건'은 <혼자 사는 사람들>에서도 주인공 심리 변화의 촉매제로 이용된다. 1인분의 삶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살아가던 주인공 '진아'의 일상은 출퇴근길에 종종 말을 걸던 옆집 남자가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 했다는 걸 알고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사건 전후의 주인공을 극적으로 대비시키지는 않는다. 대신 세심한 눈으로 미묘한 변화의 파동을 포착하고, 배우 공승연의 연기가 그 작은 파동을 한 단계 증폭시키며 이야기에 대비감을 더한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한 장면. /갈무리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한 장면. /갈무리

1인분의 삶을 사는 진아의 일상은 꽤 극단적이다. 아파트에 살지만 방 한 칸만을 원룸처럼 사용하고, 점심은 늘 혼자 먹으며, 집 밖에서는 스마트폰과 이어폰으로 외부를 차단한다. 콜센터 상담원이라는 직업도 같은 맥락이다. 각자 높은 파티션으로 나뉜 공간에서 한 번에 한 명씩을 상대한다. 이런 진아에게 혼자 계신 아버지나 1:1 교육으로 맡겨진 신입사원, 마주칠 때마다 말을 거는 옆집 남자는 모두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존재다.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차단하는 주인공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어쩐지 한편으론 내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기도 하다. 2년을 주기로 옮겨 다닌 전월세의 공간이 특히 그랬다. 내가 침해받고 싶지 않았던 만큼 타인에게도 무관심했기에, 지금까지 머물렀던 거처에서 이웃에 누가 살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따위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 나조차도 몰랐던 무심한 면면들을 하나의 캐릭터에 농축한다면 그것 그대로가 진아의 모습은 아닐까.그렇다고 해서 진아에게서만 내 모습을 보는 건 아니다. 영화의 제목이 복수형이듯, 앞서 열거한 진아 주변의 인물들 역시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외로운 감정을 깨닫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관계를 맺기 위해 타인을 찾는다. 진아 주변의 소음 같던 사람들은 그런 양면성을 보여준다. '관계'와 '소속감'을 놓지 못해 애쓰는 주변인의 모습은 진아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면서도 역시나 내 모습이 투영된다.

그렇기에 진아의 변화로 맞이하는 양극단의 교집합은 위로가 된다. 스스로 외로웠음을 자각하게 된 진아는 1인 가구의 삶을 혼자만의 전장으로 삼지 않기로 한다. 홀로 있는 아버지를 홈캠으로 지켜보는 정도의 거리감을 지키며, 잠시 지나치는 인연에도 제대로 작별하기 위해 서툴게나마 입을 뗀다. 서로 손을 뻗어 맞잡지는 않아도 종종 눈길 정도는 주는 사이, '느슨한 연대감과 약간의 보살핌'이라는 진아만의 해답은 끝내 공감을 일으킨다.

자취나 독거가 아닌 '1인 가구'라는 단어는 썩 마음에 든다. 1인으로 지속할 가능성을 열어 둔 표현 같기 때문이다. 이전에 내가 무엇이었든, 나중에 무엇이 될 생각이든, 지나갈 과거나 장담 못할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혼자인 나에게 집중하는 듯한 뉘앙스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지금 당장'만큼 확실한 건 없다. 전체 가구 수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이 3분의 1에 달하는 지금, 종종 이따금 외로운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영화 속 진아가 위안이 되어 줄 수 있길 바란다.

/전이섬 작가(마산영화구락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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