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배우열전 (10) 진주산청 극단 큰들 김혜경 배우

대학서 연극…97년 큰들로
관객과 노는 마당극에 매료

지난 1일 오후 2시께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놀이마당은 모처럼 관객들로 북적였다. 마당극 전문 문화예술공동체 극단 큰들이 2010년부터 올해로 12년째 공연 중인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났네> 200회 공연을 열었기 때문이다. <최참판댁 경사났네>는 고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마당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터널을 뚫고 나온 큰들 공연을 보려고 관객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최참판댁에는 이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연 횟수 200회를 맞는 기록적인 날이어서 그런지 배우들 표정도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큰들에서만 25년째 활동 중인 김혜경(49) 배우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김 배우는 <최참판댁 경사났네>가 처음 공연된 2010년부터 이날 공연까지 한 차례도 빠짐없이 무대에 오른 출연진 가운데 한 명이다. 10여 년간 그가 연기한 배역은 강청댁. 질투심이 강한 인물로 임이네와 월선을 시기하는 용이의 아내다.

▲ 왼쪽 사진부터 김혜경 배우, 극단 큰들 <최참판댁 경사났네> 200회 공연 속 장면에서 김혜경(왼쪽) 배우가 메주를 휘두르고 있다.  /최석환 기자
▲ 김혜경 배우. /최석환 기자

공연 후 만난 김 배우는 "소설 <토지> 속 강청댁은 측은한 사람이자, 항상 화를 내며 사는 인물"이라며 "용이를 사랑했지만 용이는 강청댁을 좋아하지 않아 화를 가득 안고 산다. 해를 넘길수록 강청댁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돼 처음 공연했을 때보다 몸에 붙는 느낌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씩 공연 사진을 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강청댁 표정인데?'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면서 "하차하지 않고 한 작품을 꾸준하게 이어올 수 있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청댁 비중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1997년 큰들에 입단한 김 배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소속 극단을 옮겨본 적이 없다. 줄곧 큰들에서만 활동하며 관객 앞에 섰다.

현재 큰들에서 배우장을 맡을 만큼 경력이 가장 많은 배우 축에 낀다. 1997년 마당극 <밥> 등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허준> <진주성 싸울애비> <효자전> <이순신> <정기룡> <오작교 아리랑> <남명> <찔레꽃> 등에 출연했다. 이 가운데 <효자전>과 <오작교 아리랑>은 <최참판댁 경사났네>보다 먼저 공연 횟수 200회를 넘긴 작품이다. 김 배우는 같은 배역을 맡아 <효자전> 250여 회, <오작교 아리랑> 230여 회째 공연 중이다.

그가 처음 연극을 접하게 된 곳은 경남대 중어중문학과 재학 시절 활동했던 교내 연극동아리 '극예술연구회'였다. 여기서 1~3학년 때까지 1년에 한두 차례 무대에 올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탤런트였다고 한다. TV를 볼 때마다 '나도 저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지냈다는 김 배우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연극동아리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꿈을 발표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제 차례 때 탤런트가 꿈이라고 말했는데 애들이 막 웃는 거예요. 그때 상처를 받아서 그 뒤로 '저는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웃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탤런트라는 꿈은 계속 안고 있었죠. 멋있고 재밌어 보이는 거예요. 그러다 대학에 연극동아리가 있어서 찾아간 뒤부터 3학년 때까지 활동했어요. 중어중문학과에 간 건 중국 배우 황비홍이 멋있다고 느껴서였어요. 전공에 흥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성적 맞춰서 그 과에 가게 된 거죠. 배우 쪽에 흥미가 많았던 것 같아요."

〈최참판댁…〉 무대 200번 올라
외길 인생 즐겁고 만족감 커

대학에서 무대 맛을 본 김 배우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연극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반대로 동아리에서 주로 하던 서양 번역극에는 흥미를 잃었다고 그는 떠올린다. 서양 연극 정서가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 극단 큰들 <최참판댁 경사났네> 200회 공연 속 장면에서 김혜경(왼쪽) 배우가 메주를 휘두르고 있다. /최석환 기자

김 배우는 한국적인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 졸업 후 큰들에 들어갔다. 이후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관객을 공연에 끌어들여 무대를 만들어가는 마당극 재미를 큰들에서 알았다. 상근단원으로 지내면서 꾸준히 마당극 무대에 올랐고, 많을 때는 한 해 120회 공연하기도 했다.

"마당극에서는 관객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장면이 바뀌거든요. 관객과 함께 놀면서 호흡할 수 있는 밀접함이랄까? 그런 재미가 있죠. 무대극이 섬세한 느낌이라면, 마당극은 날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큰 무대 장치를 쓸 수 없고 조명으로도 가려지지 않아서,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리고 즉흥적인 면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런 걸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걸 많이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김 배우는 극단에 첫발을 디뎠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작품 삼매경에 빠져있다. 오래 했는데도 여전히 배우 생활이 즐겁고 만족감이 크다고 그는 설명한다.

큰들은 2019년 10월 산청읍 내수리에 주택 30채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구성된 '큰들 산청 마당극 마을'을 준공한 뒤 단원과 단원 가족 등 50여 명이 모여 생활하고 있는데, 김 배우도 극단 식구들과 산청에서 함께 생활하며 언제나처럼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처럼 이곳에서 묵묵히 배우의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게 그의 계획이다.

"사실 이렇게 오랜 기간 배우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에요. 그래서 가끔 지금의 생활이 신기할 때도 있어요. 오랜 기간 한 가지 일하다 보면 다른 것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더라고요. 앞으로도 꾸준하게 공연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극단을 대표하는 새 작품을 만드는 중인데 큰들 특색이 살아있는 작품을 제작해서 관객들을 모시고 공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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