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로크의 걸작…승자의 관대함과 명예로운 항복
살육 현장을 자애·관용으로 바꾼 작품
그 진정한 위대함이 우리에겐 있는가

전쟁에서 군인이 가장 피하는 단어는 죽음이 아니라 '항복'이다. 그래서 역사는 항복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군인을 기록하고 있다. 모든 국가의 교전수칙은 자의적인 항복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 군의 군진수칙도 '나는 죽어도 항복하지 않겠다'고 명시되어 있다. 항복 조건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온전히 승자의 자비에 자신들 운명을 맡기는 '무조건 항복'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전력을 유지한 채 후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명예로운 항복'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스페인 황금기의 상징적 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1599~1660)의 작품 '브레다의 항복(the Surrender of Breda)'은 명예로운 항복의 가장 빛나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림 가운데 항복 의식을 행하는 두 지휘관은 항복 도구로 칼이 아닌 열쇠를 주고받으며, 무릎을 구부린 패자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승자 역시 허리를 숙이면서 예를 갖추고 있다.

이렇듯이 시꺼먼 연기를 내뿜는 배경과는 달리 그림 전면의 무대는 상호존중과 자애로움이 지배하고 있는데, 화가 벨라스케스는 살육의 현장을 자애와 관용의 무대로 바꿔 놓음으로써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승패가 엇갈리는 다른 장면에서 불과 0.73%p 차이로 한쪽은 기고만장하고 다른 한쪽은 절망했다.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선출된 후보의 득표율은 48.56%, 낙선한 후보와의 차이는 불과 0.73%p(24만 7000여 표)였다. 1987년 직선제 대선 이후 가장 작은 득표율 차이로, 그 표는 무효표 30만 7000여 표보다 적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정권교체론과 안정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고 평하고, 또 한편에서는 여야, 좌우, 진보와 보수, 세대별로 나뉘어 대선에서 팽팽하게 맞섰던 세력들이 통합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한다. 승자는 결정되었지만, 그 승리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반쪽짜리이다보니 선거 결과에 대한 유권자들의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다.

언제나 선거가 끝나면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배했다. 마치 서부영화 한 장면처럼 불과 0.73%p 차이로 승부는 갈렸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긴 이가 장땡이다. 그 차이가 미미해도 이긴 이의 성찰은 없다.

'왜 고통이 유발되고 지속되고 있는가?'라는 철학자 아도르노(Theorie W. Adorno)의 물음을 되묻고 있다. 적막하고, 무료하고, 의미 없다. 뉴스를 끊었다는 친구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

한동안 이 공허함에 시달리는 세상 반의 시간을 위로하기 위하여 16세기 벨라스케스 명화 '브레다의 항복'을 다시 떠올린다.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정복하고 성문 열쇠를 건네받는 장면에서 스페인 장군에게 네덜란드 패장이 무릎을 꿇으려 하자 얼른 일으켜주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는가! 예술에 관한 주관과 객관에 관하여 아도르노는 "예술 자체를 지향하는 예술에 대한 감정"이라고 했다. 그 감정은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반응이 아니라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라고 했다.

당선자에게 앞을 다투어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일본 기시다 총리가 축하전화를 했고, 당선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도 늘 그런 말을 했듯이 "국민이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했다. 과연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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