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계획·육성위 근거 뒀지만
시행 뒤 3년간 이행 사례 전무
도의회서도 미이행 지적 없어
도 "서둘러 계획 마련할 것"

5년 주기로 경남 영상산업 육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워 시행해야 한다는 조례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경남도가 이를 방기하고 있다. 기본계획조차 세우지 않다 보니 구체적인 영상산업 육성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2019년 12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외부에 용역을 맡겨 문화 콘텐츠 산업 전반을 묶은 기본계획서를 발행한 것을 제외하면, 조례 취지에 맞는 영상산업 5개년 계획을 세운 적은 없다. 경남도의회는 조례를 제정해놓고도 지난 3년간 행정사무감사에서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상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할 도와 이를 감시·견제해야 할 도의회 모두 업무 처리가 미진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3년째 조례 방치 중인 경남도 = '경상남도 영상산업 육성 조례'(이하 조례)는 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도의원 15명이 공동 발의했다. 김경영(더불어민주당·비례) 도의원이 대표 발의해 2018년 12월 제359회 도의회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전원 찬성으로 원안 가결됐다.

조례는 이듬해인 2019년 1월 3일 시행됐다. 같은 해 12월 경남도는 ㈜리서치코리아에 의뢰해 만화·음악·게임·영화·애니메이션·방송·광고 등 경남 문화 콘텐츠 산업 내외부 환경과 동향, 콘텐츠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취합한 뒤 <경남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 기본계획 수립연구>라는 이름의 205쪽짜리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자료에서 영화·영상 분야를 다룬 건 8쪽 남짓이다. 전국 영상업계 동향과 지역 지자체 추진사업 현황, 관련 분야 종사자 수 등이 짧게 수록됐을 뿐 지역 여건에 맞는 발전 방향을 제시하거나 분석한 내용은 한 줄도 없었다.

이는 영상산업 육성을 위한 목표와 방향, 재원 확보 및 운용방안 등을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한 조례 제4조(기본계획의 수립·시행) 취지에는 못 미친다. 도지사가 영상산업 육성을 위해 5년마다 경남도 영상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규정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박재현 영화감독은 "조례대로만 진행됐어도 지금보단 상황이 더 괜찮았을 텐데, 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에 독립영화제를 2007년에 만들었을 때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해도 지원해준 선례가 없어서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서 "그 후 조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조례가 생긴 뒤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쉬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최정민 영화감독은 "조례도 있고, 경남도와 진흥원도 있는데 기본이 지켜지지 않아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 같다"며 "그동안 관계자들과 구두로 또는 포럼에서 얘기 나눴던 부분이 많았는데 달라지는 것도 없고, 뭔가 얘기가 돼서 변화가 있을 것 같으면 금방 또 조용해지는 상황이 매번 반복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신규사업 추진 전무…위원회 구성도 안 해 = 조례는 △영상 제작 및 촬영 지원 △영상산업 육성을 위한 시설 확충 및 운영 △영상산업 관련 전문인력 양성 및 특화사업 추진 △영상물 접근이 어려운 장애·고령·외국인 및 농어촌 지역 지원 등 경남도가 필요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독립영화 제작 지원사업에 예산을 소액 지원할 뿐 영상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시설을 확충해 운영하거나, 전문인력 양성 사업 등을 추진한 적은 조례 시행 이후에도 사례가 없다.

심의·자문을 받을 수 있는 '경상남도 영상산업육성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도 조례에 담겨있으나 지금까지 위원회는 꾸려지지 않고 있다. 조례를 보면 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1명을 포함한 15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하고, 당연직 위원은 영상산업 소관 국장이 맡게 돼 있다. 위원들은 도의원, 관련 학과 교수, 영화제작자, 영화감독, 배급사 및 관련 업계 대표 등을 추천받아 도지사가 위촉한다.

김록경 영화감독은 "현장을 알거나 관련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들이 없다 보니 영상 분야 관심이 많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며 "그런 분들이 있어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일단 조례가 먼저 시행되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밝혔다.

도내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영화감독은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것은 진흥원이 담당하지만, 야심 차게 진흥원장이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예산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 같다"라며 "도에서는 방패막이로 진흥원장을 세워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산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혀 생각이 없으니 원장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진흥원장 처지에서는 괴리감을 많이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행정사무감사서 한 차례도 지적 없어 = 조례 시행 이후인 2019, 2020, 2021년에 진행된 경남도의회 행정사무감사 회의록을 살펴본 결과, 조례 미이행과 관련한 지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2019년 11월 7일 열린 진흥원 행정사무감사 때 심상동(민주당·창원12) 의원이 관련 조례를 언급한 적은 있었다. 심 의원은 당시 윤치원 진흥원장에게 "원장님은 문화예술 관련 조례 어떤 게 있는 줄 알고 계시나"라고 물었고, 윤 원장은 "예술인 복지 지원 조례, 콘텐츠 산업 진흥조례, 영상산업육성조례, 또 심 위원께서 발의했던 조례가 하나 있는데 그 조례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조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을 두고 도나 진흥원에 추궁하거나 지적한 도의원은 없었다.

이에 대해 조례를 대표 발의한 김경영 도의원은 그간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경남 영상산업이 빈약한 상황이라는 것을 담당자들에게 구두로 지적한 적이 있었는데 도의 의지가 부족해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다시 지적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미영 도 문화예술과장은 "그동안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이유는 답변하기가 조심스럽다"며 "최대한 서둘러서 진흥원과 논의해 영상산업 특화 계획을 세울 계획이며, 조례대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다만 위원회 구성은 영화인들과 소통한 뒤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