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비석으로 묘실 폐쇄한 형식
부장품 없는 박장 풍습 등 근거
가야-백제 교류한 역사 보여줘
학계 일각서 사적 지정 목소리

산청군 생초고분군에서 백제풍 무덤이 발견됐다.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생초고분군은 봉토분 40여 기와 석곽묘 수백 기가 조성된 가야유적이다. 산청 북부지역 최대 가야 고분군으로 평가받는 이곳에서 백제식 묘역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 조사기관 극동문화재연구원은 18일 "생초면 어서리 야산에 있는 M32호분을 발굴조사한 결과 백제풍 고분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훼손 없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과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미도굴 고분이라는 점, 가야유적인 생초고분군에서 백제식 무덤이 처음 발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고분"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원이 제공한 '산청 생초 M32호분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집'을 보면 M32호분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 구조다. 봉토 지름은 13m로, 무덤 외부를 보호하려고 호석을 쌓아 분묘를 만든 다음 시신을 넣고 한쪽 벽 일부를 외부와 통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무덤 형태다.

▲ 생초고분군 봉토분 40기 중 1기로, 백제 양식을 드러낸 산청 생초고분군 M32호분의 벌목 후 전경(왼쪽 사진)과 석실 내부 모습. /극동문화재연구원
▲ 생초고분군 봉토분 40기 중 1기로, 백제 양식을 드러낸 산청 생초고분군 M32호분의 벌목 후 전경(왼쪽 사진)과 석실 내부 모습. /극동문화재연구원

M32호분 안에는 돌무더기 석실 구조물이 쌓여 있다. 묘실로 들어가는 널길(연도)이 길이 2.4m, 너비 0.8m, 높이 1.1m 규모로 만들어져있고, 출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2평도 안 되는 4.85㎡ 규모의 비좁은 묘실이 자리한다.

막음용 돌인 문비석으로 널길을 가로막아 폐쇄한 구조는 가야 전역에서 나타나는 가야인들의 횡혈식 석실·석곽과는 차이가 있는 백제 계통 석실분 형태여서 주목된다.

한 차례도 도굴되지 않은 고분이지만, 조사 과정에서 부장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관에 쓰인 관못(관정) 50여 점과 작은 손칼(도자) 2점만 출토됐다. 부장품을 넣지 않는 '박장 풍습'을 따른 것으로 볼 때 가야 멸망(562년) 직전 백제계 석실 영향을 받아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된다.

지난 15일 열린 M32호분 학술자문회의에 참석한 학계 전문가들은 백제 송산리 형식의 분묘 구조라는 점에서 백제 세력이 산청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분명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우호 세력이던 백제 영향으로 대가야 세력이 이 같은 형태의 무덤을 만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류창환 극동문화재연구원장은 "생초고분군을 만든 축조집단 가운데서도 상위 지배계층이 만든 무덤이 생초고분군"이라며 "M32호분은 당시 백제 영향을 받은 가야인들이 만든 무덤으로, 생초고분군에서 당대 모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백제식 무덤이 발굴된 건 이번 조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M32호분은 백제 지배층 무덤 형식인 굴식 돌방무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자문회의에서도 제시된 것처럼 생초고분군은 추가 조사를 진행한 뒤 사적으로 지정해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지수 산청군 문화재 담당 계장은 "생초고분군 추가 조사나 사적 신청 계획과 관련해서는 현재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M32호분은 생초고분군에 분포하는 40여 기의 봉토분 중 하나다. 극동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11월 11일부터 생초면 어서리 야산에서 M32호분(280㎡)을 조사 중이었다. 관련 조사는 오는 24일 최종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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