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그림에세이 두 권이 나왔다. 화사한 꽃 그림이 가득한 책 표지가 곱다. 일흔 살, 아흔 살 할매가 그린 그림들이다. 해가 바뀌고,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서글퍼할 때가 아니다. 할매들 그림과 글을 따라가다 보면 곱게 늙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간결하고 유쾌한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괜히 친근한 마음에 할매라고 통칭해도 이해해주시리라.

◇<꽃살이-일흔 살이면 꽃이지!> (소중애 지음)

일흔 살 맞은 아동문학가 저자
자신에게 진해 한 달살이 선물
인생 향한 시선 유쾌하게 담아

'갑자기, 근거도 없이 좋았어.' 1952년생 아동문학가 소중애 작가에게 일흔 살은 그런 나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는 일흔 살 선물로 '남쪽으로 한 달 꽃살이'를 골랐다. '살아온 인생도 이렇게 골라 빼고 골라 넣는다면 완벽할 텐데…' 생각하며 짐을 꾸리는 그를 따라나선다.

충남 천안에서 사는 작가는 콩알만 한 차(콩알이)를 타고 가다 쉬다 하며 4시간 걸려 진해에 도착했다. 콩알이는 자신에게 준 환갑 선물이었다. 꽃살이는 역시 진해지! 여좌동 진해여중·여고 맞은편에 방을 마련한 그는 한 달 동안 여좌천을 오가며 꽃살이를 만끽한다. 로터리가 많은 진해에서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 보면 가끔 길을 잃을 때도 있다. 사소한 실수는 천재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누가 할겨?"

▲ 소중애 작가가 그린 <꽃살이…> 속 그림. /갈무리
▲ 소중애 작가가 그린 <꽃살이…> 속 그림. /갈무리

이른 3월 벚나무 꽃봉오리는 터질 듯 말 듯 오금 저리게 하지만 '일흔은 기다릴 줄 아는 나이'니까 그조차 기껍다. 그 사이 광양에 소문난 매화를 보고 오고, 혼술 혼밥을 즐긴다. 드디어 벚꽃이 "팡!". '맘껏 보고 즐기고 사랑할 겨. 내 가슴 가득 꽃이여'라고 외치는 작가에게 천국 이미지는 꽃밭이다. 날마다 터지는 벚꽃을 보면서 '워떻게 이런 선물을 스스로 줄 생각을 했을까? 잘왔어. 일흔 선물, 만족혀'라며 벚꽃에 집중한다. 여좌천 덱에 누워 꽃을 올려다보다 시나브로 잠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에 품은 생각이 얼굴을 말하지'라며 매일 웃는다. '일흔 나이에 이별이 어디 이뿐이었겠는가'라며 떨어지는 벚꽃잎에 슬퍼하기보다 고마워한다.

책을 읽다 보니 3월이 기다려진다. 옆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고 했던가. 벚꽃천지 진해에 가까이 살아서 행복해진다. '날씨가 뭔 상관!'이라며 비 오는 주남저수지도 걷고 싶다. 아동문학가 200여 명의 나무가 있는 고성 동시동화나무 숲, 진달래 핀 천주산과 통도사 긴 계단도 오르고 싶다. 가성비보다는 감성비에 우선순위를 두고, 무엇보다 유머를 잃지 않고 늙어가고 싶다. '다음은 어디로 떠날까?' 설레면서. 소중애 글·그림. 거북이북스. 140쪽. 1만 3000원.

◇<아흔에 색연필을 든 항칠 할매 이야기> (정석조·장희창 지음)

1931년생 정석조 할머니 작품집
코로나로 외출 어렵자 그림 시작
아들 감상·SNS 이웃 댓글 곁들여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결혼,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이사와 2남2녀를 키운 정석조 할매. 재작년부터 닥친 코로나로 외출하기 어려워진 할매는 미술교사인 막내딸 코치를 받아가며 일 년 반 동안 스케치를 배우고 색연필로 색칠도 했다. 그림 소재를 찾는다는 구실로 아들딸과 부산 근교를 돌아다녔다. 열심히 그리다 보니 시간도 잘 가고 재미도 있었다. "살면서 나를 위해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나를 위해 뭔가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

▲ 정석조 할머니가 그린 호랑이 그림.  /갈무리
▲ 정석조 할머니가 그린 호랑이 그림. /갈무리

노모가 '항칠(그림 그리다의 경상도 사투리)'한 소나무 그림을 본 아들은 '저건 그림이 아니고 바느질이야. 바느질만 70년을 해왔으니, 그 노동의 흔적이 무의식에 들어 있다가 저렇게 소나무 한 잎 한 잎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야'라고 깨달았다. 고난의 세월을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온 노모의 그림을 혼자 보기 아까워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페친들 반응이 뜨거웠다. '그림이란 보는 사람의 느낌과 그리는 사람의 마음의 만남이 아닙니까'라는 댓글처럼 할매 그림에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교감했다. 항칠 할매의 시선이 돋보이는 개성 넘치는 그림에 곁들여진 아들의 감상, 이웃들의 다정다감한 댓글을 한데 모은 따뜻한 책. 무섭게 그리려 해도 싱글벙글하기만 한 호랑이도 볼 수 있다. 임인년 새해 선물처럼. 항칠 할매 정석조 그림. 아들 장희창 글. 호밀밭. 128쪽. 1만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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