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온 까까머리 청년은 40여 년이 지나 하얗게 머리가 센 중년이 되어 공장 문을 나서게 됐다. 2021년 12월 31일 창원공단에 자리한 SNT중공업에서 정년 퇴임식이 열렸다. 이날 환갑을 맞은 노동자 42명이 작업복을 벗었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름밥을 나눠 먹은 동료들은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중년 남성의 가슴팍에 분홍빛 꽃다발이 안기고, 선후배가 악수를 주고 받았다. 

1986년 군대를 제대하고 부산직업훈련원에서 기술을 배워 SNT중공업에 입사한 김성호(60) 씨는 퇴직 소감을 말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씨는 "아직 일을 더 할 수 있는데 너무 빨리 나간다는 생각에 아쉽다"며 "한 직장에 40여 년 가까이 일했다는 자부심을 안고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산림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자부심만 안고서 떠나는 게 아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우려도 나왔다. 남아있는 이들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올해 정년을 맞은 양수호(60) 씨는 "이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기 때문에 시원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라며 "얼마 전 현장에 나가보니 신규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SNT중공업은 지난 1989년 이후 지금까지 대규모 채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해만 82명이 회사를 나갔다. 2년 사이 154명이 퇴직을 맞았으며, 이대로라면 3년 뒤에는 107명의 현장 노동자만 회사에 남게 된다. 

윤정민 금속노조 SNT중공업지회장이 퇴임하는 선배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있다. /김다솜 기자 
2021년 12월 31일 SNT중공업에서 정년 퇴임식이 열렸다. 이날 42명의 노동자가 정년 퇴임을 맞이했다. /김다솜 기자 

공채 입사 막내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다. 30여 년 동안 SNT중공업에서 일한 ㄱ(50) 씨는 "신규 채용이 잘 이뤄지지 않으니까 기술 전수가 안 되고 있다"며 "현장에 가보면 신입사원이 없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나이 든 노동자만 남아있는 현장은 활력을 잃고 있다.

정규직 일자리는 없어지고 비정규직 일자리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물량을 외주 처리를 한다거나, 협력업체 직원으로 외부 인력을 끌어쓰는 식으로 인력난을 해소하고 있다. SNT중공업 경영지원본부 관계자는 "매출이나 생산액에 따라 인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에는 매출 물량이 줄어 유급 휴직을 200명까지 한 상황에서 이전처럼 대규모 채용은 어렵다"고 밝혔다. 

윤정민 금속노조 SNT중공업지회장은 "회사와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젊은 사람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측면을 고려해 청년 신입사원을 채용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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