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범 사건을 접하면 엄벌이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성장 환경, 가족 관계 등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도적 관심과 보살핌을 제대로 하지 못한 어른의 잘못도 있다."

지난 7월 창원지법 진주지원 정성호 부장판사가 하동 기숙형 서당에서 또래를 엽기적으로 폭행한 가해 학생들을 창원지법 소년부로 송치하며 한 이야기다.

올해 어른들이 외면한 탓에, 어른에 의해 많은 학생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지난 한 해를 돌아봤다.

◇분노·그리움 폭력으로 = 지난해 3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 내용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했다.

글쓴이는 자신의 딸이 하동 기숙형 서당에서 당한 일을 전했다. 학생이 다른 학생 얼굴을 변기에 담그거나, 청소 솔로 이를 닦게 하는 등 상당히 수위가 높았다.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교육부는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7월 발표한 '서당 형태 기숙형 교육시설 실태 점검 결과' 시설종사자에 의한 아동학대가 28건, 학생 간 폭력이 15건, 학교 밖 청소년 간 폭력이 1건 등 44건이 확인됐다. 피해자는 총 46명으로 45명이 학생, 1명이 학교 밖 청소년이었고, 가해자는 총 36명이었는데 학생 28명, 학교 밖 청소년 2명, 시설종사자 6명이었다.

 

하동 기숙형 서당 아동학대부터
불법촬영 범죄 등 교원 성비위
양산 중학생 집단폭행 사건까지
사건 이면에는 제도·관심 부족

 

안타까운 점은 서당 학생들은 폭행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피해 학생 역시 경찰 수사에서 다른 원생에게 폭행과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이들이 어쩌다 괴물이 되어버린 걸까. 사건이 알려진 이후 <경남도민일보> 취재진이 한 서당에서 만난 학생은 "다 좋은데 엄마 아빠 못 보는 게 힘들어요. 엄마는 서울, 아빠는 경기도에 있어서 여름방학, 겨울방학, 명절에만 봐요"라고 말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초등학생 때부터 서당에서 지낸 한 학생이 중학교 졸업할 때는 부모가 집으로 데려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 상심해 위로해주기도 했다"며 "학생들이 자신이 원해서 온 것이 아니라 상처가 있다"고 했다.

부모 사정으로 서당에 온 학생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분노, 그리움과 답답함을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과 행동으로 주고받으며 버틴 것이다.

논란이 불거진 당시 한 주민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동군과 교육청, 경찰서 등 행정기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모두 직무유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학생 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하동의 한 기숙형 서당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 학생 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하동의 한 기숙형 서당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교원 성비위 증가 심각 =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교사가 학교에서 학생을 몰래 찍는 범죄가 벌어졌다.

지난 10월 창원 한 고등학교 교사 ㄱ 씨가 학생들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ㄱ 씨는 상담 등을 빌미로 학생들을 교실이나 교무실 등으로 불러 대화를 나누면서 책상 밑으로는 휴대전화로 불법촬영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눈치챈 한 학생이 부모에게 알렸고, 부모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교사는 "호기심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학교는 ㄱ 씨를 즉각 직위해제 조치하고 학생을 전수조사했다. 익명 피해자 1명을 포함해 12명이 불법촬영을 당했다고 호소했고, 학생 480여 명은 불안과 두려움을 보였다.

더 큰 문제는 교원 성비위 건수가 는다는 점이다. 경남지역 최근 3년간 초중등 교원 성비위 징계 건수는 총 29건으로 경기(91건), 서울(86건), 광주(41)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로 높았다. 2019년과 2020년 건수를 비교하면 서울(50→24건), 경기(40→33건), 광주(24→15건) 등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경남은 9건에서 12건으로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도내 초중등 교원 성비위 피해자 유형은 학생 피해자가 82.8%로 전국 평균(63.2%)보다도 20%p(포인트)가량 높았다.

지난해 김해와 창녕에서 교사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한 이후 도교육청은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와 같이 강도 높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교사의 불법촬영 범죄를 막지 못했다. 이에 교원 양성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교육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예비 교원에게 내실 있는 성인지 교육을 하고, 임용 과정에서 면접 등을 통해 성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는 교원을 찾아내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다문화 학생 적응 도와야 = 최근 양산에서 몽골 출신 여중생이 집단폭행을 당한 일이 뒤늦게 알려져 공분을 샀다. 이 학생은 지난 7월 6시간가량 맞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전날 피해 학생 가족이 신고해 경찰이 학생이 머물던 집을 수색했지만 피해 학생을 발견하지 못했다. 폭행은 모두가 돌아간 후 시작됐다. 폭행을 멈춰달라는 피해 학생 애원에도 가해 학생들은 동영상으로 찍으며 폭행과 폭언을 이어갔다. 특히 이날 찍은 영상이 유출되면서 피해 학생은 심각한 2차 피해를 봤다.

몽골에서 가족과 함께 이민 온 피해 학생은 가정 문제로 집을 나와 평소 알고 지내던 가해 학생 중 한 명의 집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학생처럼 다문화 학생은 우리 사회에 적응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2016년)' 보고서를 보면 다문화 가정 자녀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복수응답)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가 64.7%로 가장 컸다. 이어 '학교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45.2%)',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서(25.3%)' 등이 뒤를 이었고 '외모 때문'도 7.7%를 차지했다.

 

행정기관 교육환경 관리 개선
교원 임용 때 성인지 검증 강화
다문화 청소년 적응 방안 필요

 

학교나 가정에서 갈등이 있어도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다.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2017년 기준 다문화 학생 학업 중단율은 초등학생 1.3%, 중학생 2.1%, 고등학생 2.7%였다.

출산율이 줄고 다문화 학생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문화 학생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도울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

정성호 부장판사는 어른들 탓에서 그치지 않고 쓰러진 아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어른들이라고 했다. 가족 해체, 학교폭력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어른이 많은 2022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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