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수도권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은 물거품이 됐다. '혁신도시 시즌 2'로 명명된 공약은 대통령 임기 내에 이뤄지지 않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추진한 혁신도시 사업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본사를 지역에 분산 배치함과 동시에 이와 관련한 각종 민간기업과 연구소, 산학협력기관이 한 곳에 집적되도록 유도해 협력 단지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경제 성장을 이루는 게 목표였다. 강력한 지방분권을 이룰 한 방법으로 이를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시절이던 2017년 1월 4일 경남을 방문해서 한 약속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그해 2월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 자리에서도 "참여정부보다 더 발전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수도권 공공기관 중 이전 대상 122개를 적합한 지역으로 옮기도록 당정 간 협의하고, 혁신도시 건설에 더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4.15 총선 이후 지방이전 공공기관 추가 지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참여정부 혁신도시 계승·발전" 문재인 대통령 의지 천명에
비수도권 지자체 기대 컸지만, 임기 말 될 때까지 결국 실패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반색했다. 전국혁신도시협의회는 이미 기반시설이 갖춰진 1차 혁신도시에 추가 공공기관 이전 유도를, 창원·충주·제천·공주·순천·포항·구미·상주·문경 등 9개 도시는 신규 혁신도시 지정과 유치에 연대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정 운영 초점이 감염병 대응에 맞춰진 탓이지만 임기 말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인 점에서 정부가 추진 의지를 잃은 점이 더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기류는 지난 9월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지역언론 간담회에서 감지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청와대에 공공기관 지방이전 관련 보고를 했는데 정무적 판단으로 늦어지는 거 같다. 청와대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대선을 앞둔 시점에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스럽고, 유치를 둘러싼 지역 갈등이 우려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1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 기획전시장에서 열린 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 참석해 균형발전을 기원하며 태극기 퍼즐의 조각을 맞추는 퍼포먼스 후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1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 기획전시장에서 열린 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 참석해 균형발전을 기원하며 태극기 퍼즐의 조각을 맞추는 퍼포먼스 후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이미 문 대통령이 'K방역'을 기반으로 높은 지지율 속 국정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려는 만큼 이전 대상 공공기관 반대, 수도권 민심 반발, 지역 갈등을 유발할 정책 결정을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었다.

반발이 일자 김부겸 국무총리가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김 총리는 올 9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조만간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와 방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10월 14일 문 대통령과 전국 시도지사들이 만나는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 행사가 공공기관 추가이전 계획을 내놓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경남·부산·울산 등 인접 시도가 뭉쳐 경쟁력을 높이는 초광역협력 지원전략을 내놓으면서도 공공기관 2차 이전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어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 회의에서 이춘희 세종시장이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추진 여부를 묻자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조성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노형욱 장관이 "이번 정부 내 추진은 어렵다"고 말해 대통령 임기 내 추진 불가에 못을 박았다.

김 총리도 결국 '공공기관 사전입지 타당성 검토 제도' 도입을 약속하며 "(공공기관 이전은) 문재인 정부에서 준비를 잘해놓아야 다음 정부에서 차질없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위를 중심으로 지자체 의견을 모아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물러섰다. 이 후속 조치 격으로 지난 2일 공공기관이 설립되거나 신규 인가를 받을 때 비수도권 지역 입지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 법안은 내년 6월 22일 시행된다.

 

대선 민감한 시기에 의지 상실
'입지 지역우선 고려' 법만 개정
2차 이전은 차기 정부로 미뤄

 

차기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현 정부 기조를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수도권에 남아 있는 공기업과 공공기관 200곳을 다 지방으로 옮기겠다"며 추진 의지를 명확히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공기업, 공공기관 지방이전도 중요하지만 문화생활 등 정주 여건을 포괄적으로 마련하지 않은 채 기관들만 내려보내서는 안 된다"며 "초·중학교 등 수도권 못지않은 충분한 기반 시설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며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국회·대법원·대검찰청 지방이전과 이전하고 난 터에 공공주택 공급'을 공약한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공공기관 이전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는 '공공기관이 아닌 수도권 기업과 대학 이전 시 각종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를 약속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