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차 아마추어 장사
권재훈 장사 대통령배 준우승
경찰 업무 하며 틈틈이 운동
다시 한번 장년부 정상 노려
"포기 않고 도전하는 삶 살 것"

경남 아마추어 씨름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경남은 11일부터 14일까지 강원도 철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배 2021 전국씨름왕선발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를 획득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코로나19로 대회가 열리지 못한 2020년, 준우승을 한 2018년을 제외하고 2015년부터 5차례나 종합우승을 만끽한 경남은 종합우승 4회, 준우승 3회를 거둔 1990년대 못지않게 영화를 누리고 있다.

장년부에 출전한 권재훈(56·경남경찰청 생활안전과 경위) 장사가 2019년에 이어 2년 연속 씨름왕에 등극할지가 올해 대회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권 장사는 예선에서 난적 김상주(경북)·손성호(경기)를 이기는 등 모래판을 지배해나갔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올해 첫 장년부에 출전한 박문수(대구)의 왼덧걸이에 연이어 당하며 씨름왕 자리를 내줬다.

권 장사는 대통령배가 처음 개최된 1989년, 당시 24살이라는 나이에 씨름에 입문해 쉬지 않고 샅바를 잡았다. 1996년 열린 경남씨름왕선발대회에서 청년부 씨름왕, 2010년 전국씨름왕선발대회에서 장년부 씨름왕에 처음 오르는 등 아마추어 씨름계에서 이름을 떨쳤다. 박문수라는 새 경쟁자가 나타난 가운데 권 장사에게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고. 장년부에서 한 번 더 정상에 오르고 은퇴하겠다는 것이다.

▲ 2019년 12월에 열린 '대통령배 2019 전국씨름왕선발대회' 장년부 씨름왕에 오른 권재훈 씨가 환호하고 있다.  /권재훈
▲ 2019년 12월에 열린 '대통령배 2019 전국씨름왕선발대회' 장년부 씨름왕에 오른 권재훈 씨가 환호하고 있다. /권재훈

◇삶의 중심 잡아주는 씨름 = 권 장사는 28살이던 1993년 칠전팔기 끝에 운전면허증을 따내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이듬해인 1994년 1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세 달 만에 합격했다. 30살부터는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통했다. 그는 경찰이 된 1994년 작은형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작은형 권유로 씨름을 시작했던 그는 형이 이루지 못한 씨름왕 길을 자신이 걷겠다고 약속했다. 2년 후인 1996년 씨름왕에 오르면서 약속을 지킨 뒤 작은형 무덤에 우승기를 꽂고 절을 했다.

경찰 업무를 하면서 씨름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비번이거나 잠시 틈날 때 씨름부가 있는 학교를 찾아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등 틈새 시간을 활용했다. 사무실과 차에 아령과 고무줄·샅바를 두고 생각날 때마다 아령을 들고 고무줄을 당기는 등 훈련을 생활화해왔다.

권 장사는 씨름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운동'이라고 했다. "씨름장에 올라갔을 때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중심이 안 잡히면 내가 급해서 내가 기술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스승님께서도 씨름은 넘기는 기술이 아니라 안 넘어가는 기술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보통은 남을 넘기려 달려들다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가 안 넘어가야 이길 수 있습니다."

▲ 11일부터 강원도 철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배 2021 전국씨름왕선발대회'에 출전한 권재훈 씨와 딸 선진 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재훈
▲ 11일부터 강원도 철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배 2021 전국씨름왕선발대회'에 출전한 권재훈 씨와 딸 선진 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재훈

◇인생은 뒤집기 = 사회생활에서도 씨름 덕을 본다. 권 장사는 2008년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획득해 웃음 봉사를 한 데 이어 2012년부터는 상큼예술단에서 노래 봉사를 해오고 있다. 음악하는 양지밴드에서도 활동하면서 올해 2월에는 '잊지 못할 사랑'이라는 신곡도 발표했다.

"암스트롱이 달에 가는 과정에서 몇 번에 걸쳐 궤도를 이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적지는 달이었기에 벗어난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저 자신도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는 삶을 선택했기에 씨름도 그렇고 이 모든 게 나를 도와주는 방편이지 어떤 허세나 이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지론이다.

권 장사는 딸 선진 씨가 대학에 들어가자 씨름을 권유했다. 선진 씨는 2019년 처음으로 대통령배에 출전하고 올해 두 번째로 나가 8강까지 진출했다. 아버지는 딸이 경기할 때, 딸은 아버지가 경기할 때 서로 응원하면서 힘을 북돋웠다. 부녀가 틈틈이 서로의 샅바를 잡아주면서 대통령배에 출전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씨름 기술에 빗대자면 인생은 뒤집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죽으라는 법은 없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언제가 기회가 옵니다. 도전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씨름도 그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뒤집기 한 번 시도해봐야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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