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정착한 김지혜 씨의 그리움
김해서 자라 2015년 남편과 이주
추석 의미 희미해져도 기억남아
중국에서 온 진성룬·진쩐수 씨
고향 땅 못 밟은지 각 14년·11년
시댁 식구들 사이서 몰래 눈물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일상을 많이도 바꿔놨다. 민족 대명절 추석도 마찬가지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왁자지껄하며,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먹던 추석은 과거로 남았다. 이제는 고향 땅 밟기도 쉽지 않다. 같은 땅덩어리에 사는 이들도 그럴진대, 이역만리 바다 건너 가족을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문턱이 더 높다. 하늘길이 막히는 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져만 간다. 입출국 심사가 까다로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추억이자 그리움 = 김지혜(37) 씨는 2015년 2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14개월 딸아이, 남편 손영호 씨와 함께 김해를 떠나 호주로 향했다. 짐이라고는 여행 가방 2개가 전부였다. 잠시 머물다 떠날 여행과는 달랐다. 막막함이 앞섰다. 처음 호주 땅을 밟으면서 김 씨는 생각했다.

"이 낯선 나라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일하고, 밥 먹고, 아이 키우고. 그렇게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김 씨는 더는 '김해 사람'이 아니다. 호주 퀸즐랜드주 동부에 있는 '선샤인코스트'에 산다. 해안을 낀 아름다운 도시다. 그동안 남편은 회계사로 자리 잡았고, 김 씨도 부동산 행정 업무를 보면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14개월 갓난아기는 벌써 8살이 되어 가방 메고 학교를 다닌다.

▲ 김지혜 씨 가족 사진. 남편 손영호(왼쪽) 씨와 딸 지민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지혜
▲ 김지혜 씨 가족 사진. 남편 손영호(왼쪽) 씨와 딸 지민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지혜

"아이 교육이나 직장 문화도 달라요. 아이에게 학원이나 사교육은 전혀 없고, 학교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만날 놀아요. 가족 중심 문화가 형성돼있어서 직장 근무 시간도 자유로운데요. 오후 2시면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러 가요. 한국에서는 오후 2시 퇴근이 힘들었을 거 같아요."

바다 건너 한국은 추석이라던데, 호주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사라졌다. 명절이 없어서 좋은 점(?)도 있다. 김 씨는 "결혼하고 나서 명절을 준비해 본 기억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다"며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며느리나, 여자로 명절 준비해야 할 텐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시장을 오가는 풍경을 기억해냈다. 이제 그에게 추석은 가족끼리 장을 보러 나가 도넛이나 칼국수를 사 먹었던 추억이자, 한복을 입고 오랜만에 시골 친척을 만나러 가는 그리움으로 남았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일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김 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비행기 타고 김해공항으로 날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애틋한 사람은 단연 엄마다. 2019년 10월 어머니가 호주로 여행을 왔을 때가 마지막 모녀 상봉이었다. 그래서일까. 김해에 가서 무얼 하고 싶은지 김 씨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김해 가면 엄마를 오랫동안 껴안고, 그동안 보고 싶었고 많이 사랑한다고 얘기해줄 거예요."

◇10년이 넘는 향수병 = 창원에 사는 진성룬(46) 씨는 중국 동포다. 2005년 친척 방문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그다음 해 남편을 만났다. 한국에 온 지는 16년. 고향 길림에 가 본 지는 14년이 흘렀다. 명절은 시댁 식구들과 보낸다. 시댁 식구끼리 덕담과 안부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유독 가족 생각이 난다.

"방금 엄마랑 영상통화를 했는데, 옥수수 삶은 걸 보여주더라고요. 고향 옥수수가 참 맛있어요. 고향 밭에서 난 작물이 먹고 싶네요. 중국 가면 양고기 꼬치 많은데 여기서 먹는 거랑 달라요. 저도 가족이 모두 모여서 오순도순 재밌게 시간 보내고 싶네요."

2019년 부모님이 한국에 왔다 가고, 2년째 만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탓이다. 바다 건너 중국으로 가려면 한 달을 격리해야 한다. 진 씨는 "중국에서도 우리가 오는 거 반가워하지 않고, 오지도 못하게 한다"며 "너무 가여운 신세가 되어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20년 넘게 중국 길림에 살다 한국으로 넘어온 진쩐수(42) 씨. 2003년 합천에 살던 남편이 진 씨를 만나러 중국을 찾아왔다.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 짧게 자른 머리카락으로 진 씨 앞에 선 남편은 한없이 순수해 보였다.

▲ 진성룬(오른쪽) 씨가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 처음 중국 길림성을 방문했을 때다. /진성룬
▲ 진성룬(오른쪽) 씨가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 처음 중국 길림성을 방문했을 때다. /진성룬

남편 따라 합천에 둥지를 튼 진 씨는 결혼하고 나서 11년 동안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두 아이 엄마로 살지만, 명절이면 괜히 우울했다. 시댁에서 제사상 차리다 보면 명절이 끝나고 없었다. 진 씨도 어릴 때 노닐던 동네 길도 가보고, 아이들에게도 엄마 고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2년 전 진 씨 어머니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명절이 바뀌었다. 며칠 전에 서울에 사는 어머니가 진 씨를 보러 창원으로 내려왔다. 아이들과 함께 중국식 만두를 빚으면서 명절을 보낼 생각이다.

"시집와서 남의 식구가 된다고 하잖아요. 진짜 내 부모에겐 효도를 못 하고 산 거죠. 이제라도 엄마 얼굴 많이 보면서 살려고요. 저 같은 다른 이주 여성들도 그래요. 코로나19 때문에 고향 못 가니까 많이 우울해하죠."

추석은 우리나라 명절이다. 타국에서 건너온 이주 여성들에게는 멀게 느껴질 때가 잦다. 추석이 오면 가사 노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가족은 만날 수 없어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주여성이 많다. 이역만리에 가족을 두고 타지 생활하는 이들이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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