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하던 업체 다음 달 폐업, 4억 원 넘게 보험료 체납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 수수방관 원청업체 책임 추궁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은 제 노년을 도둑질하는 범죄입니다."

대우조선해양 한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나윤옥(52) 씨는 이렇게 밝혔다. 그는 7년째 하청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다른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비계(발판)를 설치하고, 공정이 끝나면 이를 철거하는 작업을 한다.

나 씨는 14일 오전 일터가 아닌 거제시청 앞에 섰다. 그가 속한 하청업체는 다음 달이면 문을 닫는다. 이른바 '본공(업체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인 나 씨는 고용 보장을 받지 못했다. 업체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장기간 체납해 그에 따른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나 씨가 동료 노동자들과 해결책을 촉구하며 투쟁에 나선 이유다.

나 씨는 업체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현재까지 4억 5000만 원 넘게 체납하고, 건강보험공단에서는 4대 보험료 징수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노동자가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은 대우조선 안에 있는 대다수 하청노동자 문제"라며 "노후 대책이라고는 국민연금이 전부"라고 호소했다.

이에 국민연금 보험료를 제대로 징수 안 한 정부와 체납 사실을 알고도 조치 없이 수수방관한 대우조선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씨는 '인력 보릿고개'를 앞두고 해고로 내몰리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부는 최근 한국 조선업을 확고한 세계 1위로 만들고자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했다. 내년까지 생산 인력 8000명 양성 등 여러 방안이 포함됐다. 나 씨도 이 보도를 접했다.

▲ 대우조선 하청업체 노동자 나윤옥(가운데) 씨가 14일 거제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청노동자 고용 보장과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피해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동열 기자
▲ 대우조선 하청업체 노동자 나윤옥(가운데) 씨가 14일 거제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청노동자 고용 보장과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피해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동열 기자

그는 "내년이면 조선소 노동자가 많이 필요해서 '인력 보릿고개'가 온다는데, 대우조선은 하청업체 폐업하면서 고용승계가 안 된다고 한다"며 "재하도급 물량팀은 다른 업체로 옮겨 계속 일하게 하면서 오래 일해온 저 같은 본공들은 나가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나 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해고예고통지서'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는 하청노동자를 일회용 소모품으로 보는 거라고 비판했다.

조선소 일은 위험하다. 특히 나 씨가 맡은 발판은 노동 강도가 세다. 그럼에도, 물가인상 폭을 고려하면 10년 전보다도 못한 임금을 받고 있다고 나 씨는 하소연했다.

나 씨는 "발판은 조선소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위험한 곳에 매달려 생명을 담보로 설치·해체할 때도 잦다"며 "그런데 발판 노동자 임금이 최저 시급이라면 이해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열악한 작업 환경 개선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여름철 조선소에서 철 구조물이 열을 받으면 내부는 그야말로 찜통이다.

나 씨는 "한여름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동료도 많이 보았다"며 "그저 급하다, 긴급이다, 이런 소리나 하지 팬이나 쿨러(냉방기) 설치해서 노동 조건을 개선할 생각은 안 한다. 대책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조선소에서 배는 하청노동자가 있어야 만들어진다. 하청노동자를 일회용 소모품으로 여기는데 세계 1위면 무엇하겠느냐"며 "하청노동자를 귀하게, 소중하게 여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불안한 고용·마구잡이 해고, 저임금 고된 노동, 열악한 작업 환경 등 4가지 개선이 시급하다"며 "이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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