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식사자리·자립 과정 등
시설 밖 장애인 생활 모습 조명
부정 온상 향유의 집 실상 고발
거주자 이사 이후 적응기 담아
단편 3편 유튜브 한 달간 게재

제5회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가 9일 개막했다. 2017년 시작된 영화제는 장애인 인권 신장과 지역민 인식 변화를 목적으로 김해지역 장애인단체들이 꾸준히 열어온 장애인 영화 축제다. 영화제 기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영화 3~4편이 상영됐고, 올해는 3개 단편을 선보인다. 코로나 여파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대면 온라인 행사로 연다.

◇탈시설 다룬 3편 상영 = 이번 영화제 주제는 '탈시설'이다.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자립해 살아가는 장애인들 모습을 그려낸 영화가 내걸렸다.

올해 영화제를 기획한 서미연(28) 김해서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팀장은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영화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 팀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탈시설·탈병원이 두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시설 거주 장애인들도 충분히 비장애인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라며 "지역에는 탈시설 자원이 많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영화제를 매년 열어왔고, 앞으로도 인권영화제는 계속 열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영화제가 자신 주위에 있는 장애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라며 "비장애인들은 자신 주변인의 삶이 이렇다는 것을 생각하며 영화를 감상하면 좋겠고,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탈시설 두려움을 없애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개막작은 <여우와 두루미>(연출 양준서)이고, 다른 상영작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연출 정민구),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연출 박준형)이다. 3편은 유튜브 채널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youtube.com/channel/UCYwwOhiRz3qmPMQdGf2YieQ)에 다음 달 8일까지 한 달간 게재된다.

▲ 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 집을 떠나는 거주민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누리집<br /><br /><br /><br />
▲ 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 집을 떠나는 거주민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누리집
▲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 장면.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갈무리<br /><br />
▲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 장면.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갈무리

◇시설 장애인들의 홀로서기 = <여우와 두루미>는 1년 전 제작된 13분짜리 단편 영화다. 양준서 감독과 지오필름이 기획·제작했고, 양 감독과 추주식 씨가 각본을 썼다. 영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법에 주목한다. '초대전쟁'이라는 부제가 붙은 영화는 절친한 사이인 한 장애인이 비장애인 친구를 식사자리에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설에서만 머물며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자립해 생활하는 모습을 담았다.

지난 5월에 열린 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품작 중 하나이며, 당시 영화제에서는 "비장애인보다 장애인 배우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 오랜 기간 장애인,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부대끼며 가꿔온 인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공동체 경험과 힘이 깔려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시설 장애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이 다큐는 어느 겨울 20여 년간 발달장애인 시설에서 살던 이원형(23) 씨와 김석원(24) 씨가 '탈시설'을 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시설 밖 자립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본인 명의로 집을 계약하고 전입신고도 척척 처리한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일투성이인 상황 속에서도 예산을 짜 마트에 가서 직접 장을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도 한다. 카레를 만드는 등 밥도 직접 해 먹는다.

이원형 씨는 영화에서 "20년 가까이 살던 시설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섭기는 하지만 사회 일원으로 나가는 게 '탈시설'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사람 만나는 게 기대된다"고 전했다.

▲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 속 장면. 발달장애인 이원형 씨가 탈시설 이후 전입신고를 하고 있다.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갈무리<br /><br />
▲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 속 장면. 발달장애인 이원형 씨가 탈시설 이후 전입신고를 하고 있다.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갈무리
▲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여우와 두루미> 속 장면.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갈무리<br /><br />
▲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여우와 두루미> 속 장면.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갈무리

◇인권침해·비리 온상 '석암베데스다요양원' =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 집, 폐쇄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향유의 집(옛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평생 생활하던 장애인들이 '자립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향유의 집은 비장애인과 분리돼 장애인끼리만 거주하는 대규모 수용 시설로 사회복지법인 석암재단(현 프리웰)이 운영하던 곳이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시발점이 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이부일 재단 설립자를 비롯한 비리 일가는 거주 장애인 장애수당과 생활인 주부식비, 요양원 후원금 등 약 14억 6103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돼 구속됐다. 횡령뿐 아니라 장애인 인권유린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도 컸다.

거주 장애인과 직원들이 투쟁에 나선 이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장애인 자립과 지역사회 통합을 지원하는 향유의 집으로 간판을 갈았다. 논란 끝에 시설 운영진은 공익 인사들로 교체됐고, 서울시는 탈시설 정책을 수립했다.

앞서 2009년 6월 시설에서 벗어나 자립을 요구한 중증장애인 8명(마로니에 8인)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간 노숙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향유의 집은 시설 설립 36년 만인 지난 4월 30일 폐쇄됐으며,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소재지에서 살던 장애인 43명은 서울시 장애인 지원주택으로 이사했다. 2019년 12월(19명), 2020년 9월(9명), 2021년 3월(15명)에 각각 시설을 떠난 상태다.

다큐는 시설이 없어지기 전 이곳에서 생활하던 거주 장애인들 실상을 먼저 보여준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 시절 한 직원이 요양원 내 비리와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며 시민단체에 공익제보를 했던 2007년 당시 120여 명이 입소한 상태였고, 방마다 4~5명씩 생활했고, 개인 생활을 막으려고 문을 항상 열어둔 채 생활하도록 했다는 점 등을 소개한다. 또 탈시설 이후 스스로 자립해 살아가는 장애인들 모습과 탈시설 필요성도 그려낸다. 지원주택으로 떠난 시설 거주 장애인들은 우려와 다르게 개인 주택 생활에 잘 적응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 장면.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갈무리<br /><br /> 
▲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 장면. /김해장애인인권영화제 갈무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는 영화에서 "당사자들은 시설에서 산다는 게 내 주체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다는 걸 느껴온 상황"이라며 "거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탈시설' 추진과 관련해 우려 목소리가 높지만, 막상 이사해서 나가 사는 이들은 다들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이사를 하지도 않고 사회에 적응 먼저 하라는 건 맞지 않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제는 김해장애인자립생활센터·김해서부장애인자립생활센터·진영장애인자립생활센터·신장유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김해장애인인권센터·김해서부장애인인권센터 6곳이 공동 주최한다. ㈜공감발전소·쉴가인사회적협동조합·어울림협동조합·㈜코코드론이 후원하며, 경남도·김해시가 지원한다. 영화제 참여에 관심 있는 사람은 김해서부장애인자립생활센터(055-324-1330)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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