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기는 이 땅에 우리 민족이 지금껏 있어 오게 한 근본이다. 그것은 어떤 이유로도 훼손될 수 없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친일 부왜자 논쟁도 바로 그것이다. 상처이니까 보듬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도려내고 그렇게 된 아픔을 아로새겨야 맞다. 함안에서 친일작가 조연현 시판 설치를 두고 시비가 생겼다. 애초에 친일 부왜가 발붙일 수 없었어야 했는데 유감이다.

문제 발단은 함안군이 가야읍 산책로 아라길에 지역 출신 문인 시판을 설치했는데, 한 시민단체가 여기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작가 작품이 포함돼 있다며 철거를 주장한 것에서 비롯됐다. 함안군은 지난 6월 1800만 원을 들여 가야읍 작은영화관 옆 아라길에 지역 문인 작품을 담은 시판 31개를 설치했다. 여기까지는 문화 향기와 지역 자랑이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취지였다면 잘 가려서 했어야 한다. 악취가 나면 애쓴 보람이 없어진다.

논란이 되는 조연현은 친일작가가 분명하니 지역 자랑이 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조연현은 20대 시절인 1942년 5월 동양지광에 '동양에의 향수', 6월 동양지광에 '아세아부흥론서설', 1943년 1월 동양지광에 '문학자의 입장', 8월 국민문학에 '자기의 문제로부터', 12월 신시대에 '평단의 일년'을 발표했다. 동양지광과 국민문학, 신시대는 친일문학잡지로 분류되며, 당연히 조연현이 이들 잡지에 쓴 글 6편도 친일 글로 분류된다. 1942년 무렵은 일제 식민지 침탈이 극에 달해 있을 시점이다. 하지만 그것이 용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무렵 일제 징용 등 서슬에 중국 등 국외로 피해 독립군에 입대해 조국 해방에 헌신한 이들이 많고 국내에서도 저항이 만만치 않았었다. 우리 국민은 그들을 기리는 민족정기 명분 때문에라도 조연현을 기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함안문인협회장 인식도 문제이다. 조연현이 살기 위해 친일을 했다니 기가 막힌다. 글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참에 글의 무서움도 세상이 좀 알았으면 싶다.

함안군도 원칙을 바로 할 필요가 있다. 군비를 들여서 하는 사업이면 국민 세금이다. 그것을 친일부왜자 시판에 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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