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민권 변론 이어온 변호사단체
정치적·사회운동 탄압 수단 남용된
국가보안법 역사·폐지 당위성 설명
독소조항 제7조 위헌 논거 집중 제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책 제목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인 헌법 위에 군림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기 때문이다.

'악법도 법'이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든 말든 악법은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 법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입법 의무가 국회에 있다. 인류 역사가 바뀌듯 법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이러한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법이 국가보안법이다. 1948년 제정된 가장 오래된 악법이 유지된 이유는 뭘까.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경제권력을 쥔 기득권 세력이 비호해온 탓이다. 국가보안법 역사를 보면 그 기득권 실체를 알 수 있다.

◇여순사건에 놀라 만든 임시법 = 지난 6월 29일 국회에서 '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됐다. 73년 만에 제정된 특별법을 두고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 특별법에 주목하는 이유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배경이 여순사건이기 때문이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거부하며 일으킨 사건이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좌우 이념 대치가 심한 시기였다. 정치적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 정권은 '공산주의자들 폭동'이라며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해 무차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 상당수가 희생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해 12월 1일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을 본떠 임시조치법 형태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됐다. "처벌되었어야 할 반민족행위자들이 권력에 재진입하려고 되살려 낸 일제 식민 통치의 유산"인 것이다.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이 국가보안법 폐지로 귀결될 수 있을까?

◇지금이 네 번째 기회 = 책을 펴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변론 역사가 민변 역사"라고 밝혔다. 김도형 민변 회장은 발간사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보안법은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고 사회운동 탄압 수단이 된 악법의 대명사"라며 "1988년 창립된 민변은 시작부터 국가보안법 피해자 변론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고 발간 이유를 설명했다.

민변은 책 서문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세 차례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1953년 일제 구 형법을 대체할 새 형법을 제정할 때 임시법을 폐지할 기회였고, 두 번째는 1990년 사회주의권 국가 몰락과 냉전 와해로 남북 교류 장이 열리고 국가보안법 논리적 근거가 상실됐을 때를 꼽았다. 세 번째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개폐를 추진했을 때인데, 같은 해 8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 적폐청산과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가 지난 5월 10일 경남도청 정문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10만 국민청원 시작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 적폐청산과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가 지난 5월 10일 경남도청 정문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10만 국민청원 시작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그러나 이미 정치세력화된 반공주의자들의 조직적 방해와 국회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번번이 실패했다.

민변은 지금이 네 번째 기회라고 강조했다. 2015년 헌법재판소 국가보안법 위헌 심의에서 비록 합헌 결정이 났지만 재판관 3명이 위헌 소견을 밝혔고, 올해 5월 국가보안법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1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었으며, 직후 국회에 폐지 법안이 발의된 지금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청산해야 할 역사 = 책은 1부 '국가보안법의 역사', 2부 '국가보안법이 만들어낸 인권침해', 3부 '국가보안법 제7조의 위헌성'으로 나눠 폐지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특히 가장 악명 높은 제7조(찬양·고무 등)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기본권을 침해해온 대표 독소조항으로, 책 절반 이상을 할애해 조목조목 위헌 논거를 밝힌다.

책을 덮으며 어쩌면 국가보안법이 73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건 결국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삼인. 388쪽.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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