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강경진압 지휘·친일 의혹
양아들이 고향 남면 동상 건립
이전 두고 다시 떠오른 찬반
"후손, 피해 유족에 사과해야"

제주 4·3 제73주년을 앞두고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박진경 대령의 동상 처리 문제가 다시 대두하고 있다. 동상은 남해군 남면 앵강고개 군민동산에 서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에 천착해온 구자환 영화감독은 최근 SNS에 박 대령 동상 사진과 함께 "유명한 민간인 학살자의 동상을 이대로 두어도 되는 건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박 대령은 제주 4·3항쟁 당시 진압군이었던 11연대장으로서 민간인 학살을 총 지휘한 인물이다. 1918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서 태어나 진주고, 오사카 외국어학교를 수석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군 소위로 제주에서 근무하다가 해방이 되자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국방경비대 사령부 인사과장을 거쳐 4·3 항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8년 제11연대장에 임명됐다.

박진경은 (연대장)취임 인사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했을 정도로 강경 일변도로 진압에 나섰다. 결국 그는 무자비한 토벌 정책에 반기를 든 부하들에 의해 연대장 숙소에서 피살됐다.

하지만 동상 뒤편에 새겨진 '고 박진경 대령 추모문'에는 사실 왜곡은 물론 일제 강점기 행적도 빠져 있다. '추모문'에는 "해방 후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보병 11연대장으로 부임해 불과 2개월 내에 공산반란 해방군 주력을 섬멸한 전공으로 육군 대령으로 특진했으나 불행히도 적의 흉탄에 장렬히 전사했다"고 새겨져 있다.

이 동상은 그의 양아들인 박익주 전 국회의원(11·12대, 남해·하동 지역구)이 주도해 1990년 세웠으며 추모문은 육군대장 백연엽 5연대 창설동지 일동과 육군대장 정일권 창군동우회 일동 명의로 돼 있다.

▲ 남해군 남면 앵강고개 군민동산에 제주 4·3항쟁 강경 진압을 주도한 박진경 대령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허귀용 기자
▲ 남해군 남면 앵강고개 군민동산에 제주 4·3항쟁 강경 진압을 주도한 박진경 대령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허귀용 기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해지역에서는 2001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박진경 동상 이전운동이 벌어졌다.

남해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남해지역운동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2001년 4월 지역에서 '제주 4·3항쟁과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주제로 강연회 등을 열어 동상 이전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후 2005년에도 연대회의가 동상 이전 촉구 운동에 나섰다.

지역에서 동상 이전 운동이 벌어지자 박익주 전 의원과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가 '고 박진경 대령 추모공원 참배행사'를 열며 동상 이전에 강력히 반발했다.

연대회의의 동상 이전 운동은 2005년 이후 흐지부지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 문제를 제기한 구자환 감독은 "동상 철거보다 친일, 민간인학살자의 추악한 과거를 알리는 표지석을 동상 앞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동상 관련해 지역 언론에 기고했던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씨는 "최근 제주 4·3이나 여순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는 분위기다.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려고 상생과 화해를 통해 어려운 일을 풀어 가고 있다"며 "박진경 대령 후손이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하면 풀리지 않을까 싶다. 그 역할을 현재 남해에 있는 후손이 해줬으며 한다"라고 말했다.

남해에서 동상 이전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이태문 씨도 "동상 인근에는 6·25와 월남참전국가유공자기념탑과 남해대간첩작전추모비도 함께 있어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며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전 등 동상 처리 문제는 여전히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익주 전 국회의원은 지난해 4월 작고했다. 더욱이 동상 이전과 관련해 지역 내에 찬반 여론이 여전히 존재해서다.

남해군 관계자는 "박진경 대령의 조상이나 박익주 전 의원이 지역이나 주민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남다른 지역만의 정서가 여전히 있다"며 "군민들 사이에서 민감한 사안이라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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