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직노동자 공제회 지원 제안...북유럽 국가선 보편화 된 방식
지자체 지엽적 사무 치중 경향...진취적 조례 입안 경험 쌓아야
산업 정책 소외된 노동자 고려...노사민정협 더 활발한 운영을

'노동자가 행복한 경상남도'. 창원대 산학협력단(사회과학연구소)이 연구 용역으로 최근 제안한 경남의 노동정책 비전이다.

다소 추상적인 구호로 보였는데, 이런 비전이 제시된 이유가 있었다. 경상남도 노동정책 기본계획(2021~2025) 연구 용역을 이끈 심상완 책임연구원(창원대 사회학과 교수)을 만났다. 심 교수는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 연구는 정년 전 마지막 과업이기도 했다.

◇주체성·단결 북돋는 정책 =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노동정책 비전으로 '노동존중'을 많이 내세웠다. 심 교수는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노동존중이라는 말로 노동자가 객체로 남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연구진 사이에서 있었다. '노동자가 행복한 경남'은 추상적이지만, 가치 지향으로 택한 비전이다. 결국 노동자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노동존중을 실현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노동자의 주체성을 북돋는 데 정책의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는 5대 정책 목표·45개 세부 과제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12개 중점 과제가 포함돼 있다. △경상남도 노동권익보호위원회 내 분과로 가칭 '경상남도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및 플랫폼 노동위원회' 설치·운영 △돌봄노동자 지원 △이주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지원 △경남형 노동 4.0 : 디지털 시대 좋은 일자리 확대 △고용불안정 보상수당 도입 △(가칭) 경남형 어깨동무 공제회 설립 △노동안전 지킴이단 운영 △경남 산재예방위원회 운영 활성화 △취약노동자 조직화 지원 △노동인권 교육·홍보 △노동정책 전담부서 확대·전문인력 확충 △노동권익센터 설립·비정규직 노동자 지원센터 개편이다.

이 중 '노동자 주체성'과 관련한 과제는 △취약노동자 조직화 지원 △(가칭) 경남형 어깨동무 공제회 설립이 꼽힌다. 심 교수는 "노동자 스스로 단결하도록 지원하는 게 지방정부의 정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조직·플랫폼 노동자,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고 노조가 없는 이들이 서로 돕는 공제회를 만들어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 공제회는 벨기에 겐트시에서 시작했는데, 노동자 단체가 고용보험을 운영한다. 공단이 운영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형태다. 이 공제회는 북유럽 쪽으로 확산했고, 이제 덴마크가 더 유명하다. 북유럽 국가들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사회보장 제도가 잘 갖춰진 이유다."

▲ 경상남도 노동정책 기본계획(2021~2025) 연구 용역을 이끈 심상완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정책 해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 경상남도 노동정책 기본계획(2021~2025) 연구 용역을 이끈 심상완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정책 해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지방정부 노동정책 전문성 쌓아야 = 심 교수는 지방정부가 노동정책 입안부터 집행, 평가까지 거의 경험이 없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노동정책의 권한, 예산, 인원 등은 정부가 다 가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청이나 센터로 지방특별행정관서를 만들어 지역 노동문제를 관장해왔다. 정부 노동정책이 지역 사정과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진행돼왔다는 뜻이다. 지방정부는 정부가 위임한 일부 사무만 해왔다. 노조 설립 신고 등 한정된 분야 지엽적인 일뿐이다."

지자체가 그간 노동정책을 등한시한 데는 법적 배경도 있다. 지방자치법은 '지자체 사무범위'(제9조)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노동정책은 없다. 또한 지방자치법 '국가사무의 처리제한'(제11조)을 보면 '근로기준 등 전국적으로 기준을 통일하고 조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사무'는 지자체가 처리할 수 없게 돼 있다. 이에 지자체는 노동 현안을 할 수 없는 일로 규정하거나 국가사무로만 간주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문제가 근로기준에 관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 적용도 통일적 적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 특성을 반영한 지역 노동사무는 주민의 편의와 복리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지방정부의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 노력을 내버려둬 왔다. 지역 노동정책을 새롭게 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나왔다. 서울시는 '노동존중특별시'를 내걸며 진취적인 사례를 만들어왔고, 경기·충남·광주·부산 등도 그런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법에 명료한 규정이 없다 보니 다양한 조례를 만들어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경남 역시 여러 노동 관련 조례가 제정돼왔지만, 노동정책 전문성이 확보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공직사회는 '예산 부족'이나 '할 수 있다'라는 조항에 묶여 있다. 단체장이나 집행부서가 노동정책을 업무계획에 넣는다고 해도 그 인식의 깊이가 얕거나 강도가 세지 않다. 집행부서 공무원이 자주 바뀌는 문제도 있다. 경남도 역시 노동정책과라는 조직을 만들었지만, 경험이나 전문성을 축적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구조다."

그래서 제안된 것이 '노동권익센터 설립'이다. 조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노동정책을 연구하고 집행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노동권익센터를 별도로 설치한 서울시는 민간기관에 이를 위탁했고, 경기도는 외부에 맡기지 않고 직영하고 있다. 경남은 노동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는 경험을 축적해온 연구자나 공무원 인력 자원이 많지 않다. 경남도에 노동정책과가 있지만, 이를 뛰어넘어 노동인권국을 신설하자는 제안도 했다. 현재 경남도 여성특별보좌관이 노동정책 업무를 겸하고 있는데, 노동특보를 별도로 둬야 한다. 지금 조직 체계로는 노동정책 실행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민관 협치 중요 = 지난해 5월 제정된 '경상남도 노동자 권익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에 따라 도지사는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 등 취약노동자를 포함해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한다. 심 교수는 경남도가 정책을 구상·집행·평가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와 '협치'를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짚었다.

"지방정부는 지금 안고 있거나 환경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노동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지방정부가 전부 할 수는 없기에 정부와 업무를 조정하고 조율해야 할 것이다. 경남도가 역점을 둬 추진 중인 '스마트공장'과 관련해 혜택을 보는 이들이 있지만, 피해를 보는 노동자들도 있다. 관련된 사람들이 편익과 비용 부담을 논의하고 배분해야 한다. 노사정 거버넌스(협치)가 중요하다. 경남도 조례에 따라 구성된 노사민정협의회가 작동이 덜 되고 있는데, 형식적인 운영을 벗어나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이슈를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이번 기본계획안은 산업구조 변화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주목받는 필수노동자·이동노동자·감정노동자·플랫폼 노동자·특수고용형태 노동자 등을 위한 정책을 담아 의미가 있다. 지난해 8~10월 비정규직 3846명과 특수고용형태(플랫폼·자유계약 등) 3158명 등 취약노동자 7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진행됐다.

"경남도 재난지원금 신청자는 사전에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아 조사 대상에 포함할 수 있었다. 그 규모만 노동자 1만 9680명이었다.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는 지자체가 평소 파악하기 어려운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조사할 수 있었다. 다만 문자메시지를 통한 온라인 설문조사였기에 이번 실태조사에서 저학력·스마트폰 미사용 노동자는 제외됐다. 이런 조사의 한계가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교적 큰 규모의 조사였다. 취약노동자 문제점을 파악하고 정책과제를 도출하는 데 중요한 조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경남도는 다음 달 노동권익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 기본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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