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들에게 작품 건네받아
`가을 방아깨비는' 수작 평가

원은희(61) 시조시인이 경남 고성 출신 서벌(1939~2005) 시조시인의 두 번째 평론집을 냈다.

<서벌, 적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로 원 시인이 서벌의 미발표·유고작 60여 편을 발굴하고 연구한 글이다.

서벌은 '가난의 한'을 주제로 미학적 세계를 구축한 시조시인이다. 그는 한평생 가난의 굴레에서 시조를 쓰며 현실을 극복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로 학교교육을 끝내야 했고, 허리 굽으신 할머니와 병석에 누우신 아버지와 어린 동생 셋을 돌봐야 했다. (중략)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식구가 모두 굶주리는 것 헐벗다시피 사는 정황이었다. 나의 문학은 바로 여기로부터 비롯된 몸부림의 숨소리들이었다."(<조선문학> 중 )

▲ 평론집 <서벌> 표지. /책 갈무리
▲ 평론집 <서벌> 표지. /책 갈무리

서벌은 1961년 한국나이로 23세에 첫 시집 <하늘색 일요일>을 발표했다. 시조집 <각목집(角木集)>, <습작65>, <걸어다니는 절간> 등을 냈고 중앙일보 시조대상(1992년), 남명문학상 본상(1993년), 가람시조문학상(2003년) 등을 수상했다.

원 시인이 박사논문, 평론집을 통해 서벌을 끊임없이 연구한 이유는 '깊은 인연' 덕분이다.

원 시인이 1992년 <시와 비평> 신인상을 받을 당시 서벌은 심사위원이었다. 또 원 시인이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자 서벌은 동향(경남) 후배가 상을 탔다며 직접 시상식에 왔다.

원 시인은 "박사논문을 쓸 때 신념이 우선 작품이 좋고 시조부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지역 작가를 연구하자였다"며 "서벌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작품이 잊혀가는 게 안타까워 작품과 업적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는 책임의식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첫 번째 평론집이 나온 이후 고성군이 원 시인의 조언을 구해 시비(詩碑)를 건립하기도 했다.

이번 평론집은 제1부 의미와 율격 구조, 2부 미발표·유고작품으로 구성됐다. 서벌의 가난으로 슬펐던 유년시절과 출향 이후 고향을 그리워하는 삶, 뇌출혈로 쓰러진 후 죽음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사유체계 등이 담겼다.

▲ 육필 원고. /책 갈무리
▲ 육필 원고. /책 갈무리

원 시인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서벌의 작품을 유족에게 받아 시에 담긴 절망, 소외, 죽음, 귀향의식 등을 끄집어냈다.

저자가 꼽은 서벌의 미발표·유고작 중 가장 마음의 울림이 큰 작품은 '가을 방아깨비는', '국화도(菊花島) 가는 길', '가슴에다 고성(固城) 넣고 사는 노래' 등이다.

원 시인은 "정형시와 자유시의 경계를 초월한 명작 '서울·1'이 적막을 노래했다면 '가을 방아깨비는'는 삶의 허무를 노래했다"며 "이번에 공개된 미발표·유고작은 가난, 외로움, 결핍, 고향의 그리움 등이 더 짙게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요아침. 143쪽.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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