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회는 항상 있지 않지만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고 여겨
3년전 마산청년작가회 직 맡아…지역 작가로서 맥 이어가고파

국내 미술판은 여전히 코로나19에 속앓이 중이다. 연도 끝자리가 0에서 1로 바뀐 지금도 전염병이 창궐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많던 전시는 대부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드문드문 차려진 전시엔 일부 시민만 발걸음할 뿐이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경남지역 작가들을 2주에 한 번씩 소개한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의 근황과 그들이 공들여 만들어 온 결과물을 만나보자.

지역 미술협회와 미술청년작가회의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는 젊은 작가들에게 예술단체가 외면받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창원만 하더라도 20~30대 작가들은 두 단체 가입에 소극적이다. 적을 두지 않고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예술인 지원사업에 참여하거나 마음이 맞는 이들과 작품전을 함께하는 등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한 게 단체 미가입 배경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지역 예술단체에 뿌리를 두고 활동을 이어가는 화가가 있다. 마산미술청년작가회 부회장 임채광(36) 작가다. 그는 이 단체에서 3년째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임채광 작가를 지난 5일 그의 10번째 개인전 '임채광'(3월 5일까지)전이 열리고 있는 창원 의창구 더시티세븐 연아트오브갤러리에서 만났다. 그는 "청년작가회에 가입한 건 지역작가로서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기회를 찾기 위해 계속 움직이고 또 움직이면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작가는 대구지역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학사 학위를 받은 2012년부터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올해로 경력 10년차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활동 반경이 꽤나 넓다.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마산 태생이지만 대학 졸업장을 받은 이후 서울, 대구, 울산, 마산 등 여러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았다. 방황의 시기도 있었으나 붓을 손에서 놓는 법은 없었다. 둥지를 튼 곳에선 기회가 닿는 곳에 정성껏 그린 작품을 출품했다. 여러 단체전엔 그의 이름 세 글자가 남아있다.

"9년 전에 마산청년작가회에 가입했어요. 그 뒤로 청년작가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면서 살았어요. 예전에는 한 지역에 국한된 작가로 살고 싶지 않아 했었어요. 여기저기에 저를 보여주고 알리고 싶어서 지역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불러주면 불러주는 대로 전시를 하러 다녔죠. 그런 일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저를 알리는 일을 계속하는 게 숙제가 될 것 같아요."

​▲ 임채광 작가가 창원 연아트오브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에서 작품 앞에 서 있다. /임채광 작가​
​▲ 임채광 작가가 창원 연아트오브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에서 작품 앞에 서 있다. /임채광 작가​

그는 말대로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개인전과 단체전 참여 경력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까지 개인전을 연 횟수는 모두 합해 10차례다. 단체전은 30여 회에 이른다. 개인전과 단체전이 열렸던 지역은 서울, 수원, 부산, 창원, 김해, 청도, 영천 등인데, 지난 2019년엔 홍콩에서 열린 홍콩아트페어에도 참여했다. 그의 작품엔 '가치'라는 주제가 엮여있다. 순간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에서 정해진 기획이다. 임 작가의 이번 개인전 주제 역시 그렇다. 연아트오브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주제는 '찰나의 순간'이다.

"나를 남기고 나의 가치를 표현하는 게 그림이에요.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들은 크게 봤을 땐 '시간의 가치'에 관한 얘기였어요. 그런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순간순간을 의미 있고 소중하게 보내자는 생각을 많이 해요. '찰나의 순간'이라는 주제로는 5년 정도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다른 지역에 튼 둥지를 떠나 임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온 시기는 지난 2018년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마산청년작가회의 부회장직을 맡으며 지역에서 작가로 활동 중이다. 단체 회원은 2월 기준 26명. 분기별로 한 번씩 만나 전시계획 등을 주제로 소통하고, 개인 작품 활동도 따로 병행한다. 작가는 코로나19 여파에도 이전과 크게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항상 전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계속 있는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올해도 그는 지금처럼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작가의 2021년 목표는 최대한 많은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활동했잖아요. 지금은 지역작가로서 맥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커요. 기회가 된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전시를 열긴 하겠지만, 마산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지역에서 끈을 놓지 않고 활동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거든요.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나아지고 있다고 느껴요. 나중에 50·60대가 되면 난 어떻게 바뀌게 될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어떤 걸 그리고 있을지 궁금해서 나이가 빨리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계속 움직여보려고요."

▲ 임채광 작 '각자의 달빛(2021)'. /임채광 작가
▲ 임채광 작 '각자의 달빛(2021)'. /임채광 작가

작가의 작업노트 - 파랑은 물의 색, 시작의 색, 존재의 색

저는 찰나의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푸른색을 사용해 내면의 날것을 표현합니다. 그림을 본다는 건 제 자신을 온전하게 만나는 과정입니다. 보통의 순간에서 시작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붓 자국이 어떠한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자연스레 지나가는 똑같은 순간들이 그런 거죠. 그 속에서 다양한 가치들을 화면 안에 채워갑니다. 다시 없을 순간과 다시 없을 자신을 그리는 겁니다.

순간과 순간이 겹치고 쌓이면 하나의 존재가 됩니다. 생명력과 존재성을 의미하는 파란색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파랑은 물의 색이고, 시작의 색입니다. 존재의 색이라는 의미도 되죠. 존재성을 가진 무수한 것 가운데 많은 영감을 주는 색이 파란색입니다.

찰나의 기록들은 지금도 끝없이 생멸을 반복합니다. 시간의 순간이라는 철학적 의미의 세계가 저에겐 순간의 기록 행위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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