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활동부터 우리말 바로 쓰기
이제 '평등한 말 쓰기'로 나아가자

지난해 한글날 즈음해 '국어진흥조례' 전면 개정안을 내고 현재 법적 검토 중이다. 이름도 '우리말 바르게 쓰기 조례'로 바꾸었다. '국어'도 일본말임을 이번에 알았다. 내가 조례를 발의했는데, 조례가 나를 키운다.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고 주장하려다 보니 말 하나하나를 깊이 보게 되고 더 좋은 말, 더 어여쁜 말을 배우게 된다. 의정 활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행정사무감사나 예산 심의에서 외래어가 지나치게 많다 싶으면 따끔하게 지적한다.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는 것이 도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공직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응을 보는 것도 즐겁다. 처음에는 중앙부처에서 오는 사업명이 이미 외래어라서 경남도만 우리말을 고집할 도리가 없다던 공직자들도 차츰 뭔가 대체할 말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최근 도정혁신단은 보도자료를 내면서 '퍼실리테이터'를 '소통설계자'로, '플랫폼'을 '기반'이라고 바꿔 썼는데, 어색하기는커녕 눈에 쏙쏙 들어왔다. 원래 같았으면 보도자료 제목은 '경남 퍼실리테이터 자체 양성'이었을 것이다. 퍼실리테이터가 무슨 말인지 아는 도민은 얼마나 될까.

의회에 외래어 많은 보고 자료를 들고 오면서 "박옥순 의원이 또 지적할 텐데…"라는 마음만 들어도 좋은 일이다. 외래어를 습관처럼 사용해 오염된 말과 글쓰기에 하나의 파문이라도 던졌다면 내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바꾸고, 바꿔보니 어색하지 않아 또 바꿔보고, 그렇게 공직사회 말글이 바뀌다 보면 다른 시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끼끗한(활기차고 깨끗하다는 우리말) 공문서로 경남도가 '소통 1번지'가 될 것이다. 출처를 가린 채 공문서만 봐도 "아, 이건 경남도 문서네"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우리말 바르게 쓰기 다음 단계로 평등한 말 쓰기를 주장하려고 한다. 도민과 소통이 되려면 특정 도민이 '배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소외시키면서 아름다운 말글을 써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는 평등하지 않은 말들은 많이 알려졌는데 좀처럼 널리 퍼지지 않고, 특히 불특정 다수 도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모차, 수유실, 미숙아, 처녀출전, 자매결연, 음란물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은 아빠들이 아기 띠를 매거나 유아차에 태워 외출하는 모습이 흔하다. 부모 모두 모는 유아차를 유모차(乳母車)라고 할 필요는 없다. 마트나 백화점, 공공기관에 설치된 수유실(授乳室)은 아빠의 출입을 원천 금지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아기 쉼터로 바꿔야 한다. 여자 화장실에만 아기 기저귀 가는 공간이 있는 것도 거꾸로 아빠 배제이고, 차별이다.

또 미숙아는 조산아로, 처녀출전은 첫 출전으로, 자매결연은 상호결연으로 바꾸면 된다. 충분히 공감할 만하지 않은가.

우리 자치법규에도 이런 말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경상남도 모자보건 조례'에는 '미숙아'가, 성범죄를 사소하게 느끼게 하는 '음란물'이라는 표현은 '경상남도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 활성화에 관한 조례', '경상남도 청소년 정보화 역기능 청정지역 조성에 관한 조례' 등에 있다. 또 '자매결연'은 '경상남도 식품 등 기부 활성화에 관한 조례', '경상남도 외국자치단체간 자매결연에 관한 조례' 등에 담겨 있다. 새해에는 '평등한 우리말 쓰기'에 방점을 찍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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