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 미작성 부지기수
학교 노동교육 조례안 계류 중

경남 청소년에게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남도교육청 교육인권경영센터가 도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노동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도내 청소년노동인권단체가 중·고등학생 대상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잇따라 내놨다.

경남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준)와 경남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네트워크가 22일 오후 2시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 '2020 경남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 및 청소년 노동인권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실태조사는 △청소년 노동 경험·실태파악 △노동인권교육 필요성 파악 △정책 제시 등을 목적으로 지난 7월부터 도내 중·고등학생 205명을 대상으로 했다.

◇4명 중 1명만 근로계약서 작성 = 응답 청소년 10명 중 2명(21%)은 노동 경험이 있었다. 이들 중 75%가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했거나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계약서를 사업주와 1부씩 나눠 가진 청소년은 4명 중 1명(25%)에 불과했다. 또, 3명 중 1명(33%)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임금을 계약서 내용보다 적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했고(43%), 일을 하다 다쳤을 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거나(23%),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한(21%)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임금 '꺾는' 사업주들 = 이날 토론회에서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겪은 부당대우 사례를 직접 증언했다.

고동욱(창원공업고교) 학생은 전단 홍보와 고깃집 아르바이트 경험을 떠올리며 "전단지 홍보는 매수당 정해진 임금이 있는데, 시간당 임금을 꺼내자 '밥 사줬으니 그 정도면 괜찮지 않냐, 계속 시급을 따질 거면 다음에는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고깃집에서는 사업주에게 근로계약서를 안 쓰냐고 물었더니 '안 써도 된다' '귀찮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박민주(경남대) 씨는 가장 흔한 사례로 '임금 꺾기'를 들었다. 사업주가 갖가지 조건을 달아 임금을 꺾어서 지급한다는 것이다. 한가한 시간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사업주가 임의로 30분을 휴게시간으로 잡아버리거나, 매장에 손님이 없으면 약속된 근로시간보다 일찍 퇴근시키는 경우 등이다. 박 씨는 일방적인 합격 취소, 구직정보와 다른 실제 임금, 외모 지적 등 사례를 들며 "노동자가 스스로 권리 주체임을 인식하게 하는 학교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노동교육·전담기구 필요 = 경남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2014년부터 매년 찾아가는 노동인권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센터는 청소년 노동인권 상담가를 양성하고, 학교에 파견해 교육하고 있다. 공선미 김해팀장은 "최소한의 지원 속에 일부 교육이 진행되지만, 여전히 대부분 청소년이 노동인권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노동현장으로, 사회로 진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권 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의무화하려면 관련 조례가 필요하다. 현재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에는 이영실(정의당·비례) 도의원이 대표발의한 '경남도교육청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조례안'이 계류 중이다. 직업교육학교·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특성화고등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일부 직업학교에 국한돼 있다는 한계도 있다. 앞서 2010년 경남 전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학생노동인권교육조례가 발의됐지만 무산된 바 있다.

청소년 노동인권 문제 전담기구를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순규 창원시의원은 "창원은 노동도시이기 때문에 경제살리기과 노사협력부서 공무원만으로는 이 사안을 챙길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17년 제정된 창원시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 조례에는 '청소년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청소년노동인권센터는 노동전문변호사·공인노무사 등 전문상담인력이 배치돼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기댈 수 있는 전담기관이다. 지난 2016년 광주광역시에서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문 의원은 "조례를 실제 현장에서 이행하지 않으면 종이 쪼가리에 불과 한 것"이라며 △노동·교육당국 협력체계 구축 △청소년 일자리 창출 △학교밖 청소년 노동교육 등 정책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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