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양산·남해 단체 참여
영상 활용해 활동상 조명
이상 위한 삶·생각 인상적
참여자 "또다른 성장 도모"

"최정화 작가님의 제안으로 예술가가 아닌 지역 활동가들이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됐어요. '이런 단체가 예술가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시던 최 작가님을 보면서 많이 배웠는데요. 이분들께 전시 제안을 하게 된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경남도립미술관 박지영 학예사)

"사랑과 아름다움은 아무 설명이 필요 없는 거잖아요. 여태까지 예술가들이나 큐레이터들이 기획해온 건 행정을 위한 예술이었고, 약간의 공해, 소음, 쓰레기였어요. 이런 전시가 없어지려면 지역 활동가들과 작가, 기획자들이 만나야죠.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지금부터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 활동가들의 전시가 계속 이어지길 원합니다."(최정화 작가)

지난 3월 1일(1062명) 이후 9개월여 만에 가장 큰 규모의 전국 신규 확진자(629명)가 나온 지난 3일,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립미술관 2층 제3전시실에서 '살어리 살어리랏다'전(내년 2월 14일까지) 전시연계 프로그램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경남도립미술관 박지영 학예사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열린 이번 행사에는 설치미술가 최정화 작가, '별유천지(別有天地)전' 참여 작가, 관람객 20명, 미술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관람객이 20명으로 제한된 채 열린 행사였지만, 열띤 분위기 속에 행사가 진행됐다.

▲ 위 사진부터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전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한 작가와 지역 활동가들(왼쪽부터 공유를 위한 창조 박은진 대표, 돌창고프로젝트 최승용 대표, 최정화 작가, 비컴프렌즈 김지영 대표, 팜프라 유지황 대표).   /최석환 기자
▲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전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한 작가와 지역 활동가들(왼쪽부터 공유를 위한 창조 박은진 대표, 돌창고프로젝트 최승용 대표, 최정화 작가, 비컴프렌즈 김지영 대표, 팜프라 유지황 대표). /최석환 기자

◇지역 활동가들의 활동을 전시하다 = 이날 행사에서 박 학예사가 언급한 지역 활동가들은 거제와 양산, 남해 등지에서 활동하는 공유를 위한 창조 박은진 대표, 비컴프렌즈 김지영 대표, 돌창고프로젝트 최승용 대표, 팜프라 유지황 대표 등 4명이다. 작가로 활동하며 제작한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이 아니라 단체 활동상을 소개하는 게 전시의 특징이다. 누구나 꿈꿀 수 있는 무릉도원, 이상향의 세계를 일컫는 별유천지의 뜻처럼, 각기 다른 지역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전시장에 드러난다.

공유를 위한 창조는 동네 유휴공간을 공유공간으로 활용하며 이웃과 관계를 형성해 살기 좋은 마을을 설계하는 청년 단체다. 현재 거제 원도심 장승포에서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4전시실에선 이들이 지난 2014년 설립 이후 벌여온 활동을 연도별로 소개하고 장승포에 만들어놓은 공유공간을 전시장 안에 재현해 놓은 화면을 보여준다. 양산 지역 발달장애인과 어우러져 사는 사회를 추구하는 마을 공동체 사회적기업 비컴프렌즈는 공유를 위한 창조와 같은 공간에서 자신들의 활동을 전시 중이다.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직업 프로그램 중 하나인 도시 양봉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비컴프렌즈가 내놓은 관객 참여형 영상 작품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사를 건네며 다양한 소통방식을 보여준다.

제5전시실에선 시골동네에 버려진 돌창고를 활용해 남해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돌창고프로젝트와 청년 농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팜프라의 전시가 펼쳐졌다. 돌창고프로젝트는 유휴공간으로 남아있는 돌창고를 재생시켜 남해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자는 기치를 들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단체다. 2016년 시작해 남해에서 다양한 문화적 가치들을 축적해가고 있다. 이들은 유휴공간에서 전시와 공연을 보여주고 이를 출판물로 기록하는 등 단체 활동상을 전시장에 내놓았다. 같은 공간에서 전시에 참여 중인 팜프라는 남해 상주면 두모마을에서 도시를 떠나 시골마을에서 정착해 살아가려는 청년들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민간과 행정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담당하며 농촌 삶의 전환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팜프라는 팜(Farm)과 인프라(Infra)의 합성어다. 촌라이프 실험 마을 팜프라촌과 청년 농부를 위한 이동식 주거 집짓기 워크숍, 지역 농수산물을 읽고 먹는 팜프라 매거진 등 자신들의 활동을 보여준다. 제5전시실에 있는 영상실에선 팜프라를 비롯한 별유천지전에 참여한 활동가들의 활동상을 담은 영상물도 같이 나왔다.

▲ 위 사진부터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전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   /최석환 기자
▲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전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 /최석환 기자

◇지역 활동가들, "전시 참여 즐거웠다" 소감 전하기도 = 최 작가와 함께 이날 행사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전시 참여 소감과 그간 전시를 준비하며 겪었던 고충을 털어놨다.

공유를 위한 창조 박은진 대표는 "처음 하는 일이라서 힘든 점이 많았다"며 "우리가 하는 일은 지역에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인데, 전시로 이것을 어떻게 구현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어있는 공간에 물건을 가져다 놓는 것과 가벽이 쳐진 빈 공간에 물건을 놓는 건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진 생각을 하지 못해서 효과적으로 공간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팜프라 유지황 대표는 "돌창고팀과 두 달 가까이 기획미팅을 하면서 전시 재료를 두고 겪었던 문제 등 여러 제약이 있었다"며 "기관이 가진 언어와 사업체가 가진 언어가 달라 힘든 점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다 재밌었다"고 밝혔다.

긍정적인 이야기도 뒤따랐다.

돌창고프로젝트 최승용 대표는 "거인의 어깨에 기대서 공식적으로 우리가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 또 다른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며 "돌창고 바로 위층에 살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일이었는데, 전시를 준비하면서 창원으로 출퇴근한 10일 동안 도넛도 사 먹을 수 있고, 팀원들과 다른 분들을 만나면서 얻는 즐거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비컴프렌즈 김지영 대표는 "어떻게 하면 될지 고민을 하는 게 어렵긴 했었지만, 다 내려놓고 있는 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준비하다보니 마음이 편했다"고 밝혔다.

관람객은 행사가 진행된 2시간여 동안 참석자들의 말을 경청하며 자리를 지켰다. 최 작가에게 한 관람객이 "별유천지 전시 어떻게 보셨나요?"라고 묻자, 솔직한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최 작가는 "활동가들의 생각과 삶은 좋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전시였다"고 했다. 이어 "미술관 안에서 이 전시가 무엇을 보여줬냐고 하면 그렇다는 것"이라며 "전시로서는 0점, 내용은 100점"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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