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경남지부 등 협업
책 〈이주민의 노동기본권〉 출간
노동법·제도 13개 언어로 번역
노동조합·노동권 의미 등 담아

올 상반기 경남에서 고용허가제로 일한 비전문취업(E-9) 비자 외국인노동자는 2만 2124명(한국고용정보원 외국인고용관리시스템(EPS) 통계)입니다.

이들을 고용한 사업장은 제조·건설·농축산·서비스·어업 등 5개 업종 6257곳. 물론 여기에 다른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과 결혼이주여성, 미등록 체류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이주노동자 규모는 훨씬 더 커집니다.

이들이 우리나라 노동자가 꺼리는 자리에서 일하며 산업 근간의 한 축이 되고 있음은 이제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침해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이주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의 권리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이주민의 노동기본권>이 나왔습니다. 책을 만든 이들을 만나보고, 현장 외국인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김정열(오른쪽에서 둘째)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부대표가 지난 8일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들에게 <이주민의 노동기본권> 책자를 나눠주고 설명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 김정열(오른쪽에서 둘째)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부대표가 지난 8일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들에게 <이주민의 노동기본권> 책자를 나눠주고 설명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이달 발간된 <이주민의 노동기본권>은 협업의 결과물이다. 2012년과 2016년에 이은 개정판인데, 올해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사회연대기금으로 이번 작업이 이뤄졌다.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금속노조 경남지부·대우조선지회·성동조선지회·법률원 경남사무소·서부산지회,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거제고성통영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내용 = 책은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다. 243쪽 분량으로 '1부 노동기본권-2부 고용허가제-3부 안전하게 일할 권리-4부 기타'로 구성됐다. 영어·필리핀 타갈로그어·미얀마어·몽골어·네팔어·태국어·방글라데시어·베트남어·캄보디아어·스리랑카어·인도네시아어·우즈베크어·중국어 등 13개 언어로 나왔다. 책을 펼쳐보면 왼쪽은 한국어로, 오른쪽은 외국어로 적혀 있다. 13명이 번역 과정에 참여했다.

책은 그간 변화된 노동법을 반영하면서 이주노동자가 쉽게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고쳤다. 삽화도 실렸다. 제작에 함께한 김남욱 노무사는 "이주민에게 노동법을 소개하는 책이나 자료는 그동안 많이 나왔다. 이번 작업이 달랐던 점은 파고들수록 어려운 법을 어떻게 하면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이라며 "법을 둘러싼 모든 것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고, 실생활에서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담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일례로 가장 처음 나오는 내용을 보면 '누가 노동자인가요?'라는 물음에 "임금을 받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 "하는 일이, 명칭이, 성별이, 국적이 달라도 모두 노동자이며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 등 설명이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근로기준법 제2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도 적혀 있다. 김 노무사는 "'어떤 사람이 노동자냐'를 따지면 임금 수령, 출퇴근, 인사상 제재 등 구체적인 내용을 풀어서 담을 수 있지만, 너무 방대하다. 이를 생략하면서도 대신 인권 요소를 강조해 '일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고용허가제' 설명에도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4년 8월 시행된 이 제도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모두 한국의 노동법을 적용받는다. 즉 사업주들은 노동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책은 근로계약, 취업규칙, 임금(기본급과 통상임금·퇴직금·최저임금·체당금), 노동시간(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유급휴일·휴게시간) 등을 하나씩 설명한다. 아울러 산업재해 발생 은폐 금지와 보고, 위험한 기계 방호(안전) 조치, 원청 사용자 작업장 순회 등 산재예방 조치와 안전보건 정보제공·조치 의무, 산재 신청 과정도 담고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권의 의미, 4대 보험(건강보험·산재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 등도 풀어낸다.

책 구매는 마창거제산추련(055-267-0489·www.mklabor.or.kr/v3/)으로 문의하면 된다. 국내외 이주민 공동체와 지원단체,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에 배포한다.

▲ 지난 5일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또뚜야 씨와 김남욱 노무사가 <이주민의 노동기본권> 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br /><br /> /김신아 인턴기자 sina@idomin.com
▲ 지난 5일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또뚜야 씨와 김남욱 노무사가 <이주민의 노동기본권> 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신아 인턴기자 sina@idomin.com

◇의미 = 번역에 참여한 또뚜야 부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미얀마어 상담 담당에게 이 책은 뜻깊다. 또뚜야 씨는 "통역보다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법과 제도를 책으로 만들어 큰 의미가 있었다"면서 "미얀마는 한국 역사와 비슷하게 군부독재가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2010년 이후 민주화가 됐다. 하지만 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인식도는 아직 낮은 상태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노동법을 배우고 미얀마에 있는 노동자까지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1997년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온 또뚜야 씨는 2012년부터 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경험이 있었기에 책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는 "20년 전에는 한국에 노동법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사업주가 '우리 회사에는 잔업수당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믿었고, 법이 있음에도 누구한테 물어볼지조차 몰랐다"면서 "이주노동자는 책에서 모국어로 된 부분을 읽고, 사업주나 근로감독관 등에게 한국어로 된 부분을 보여주면서 대화할 수 있다. 임금, 휴업급여, 퇴직금 계산, 산업재해 등 권리와 제도를 외우지 못하고 한국어를 완벽하게 쓰지 못해도, 법과 제도 조항까지 담은 이 책을 보면 힘을 실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얀마의 경우 한국에 남성 노동자가 많지만, 남녀 모두를 위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대처 방안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을 담은 출산·양육·돌봄의 권리(모·부성권) 등이 책에 담겨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또뚜야 씨는 부산경남 미얀마공동체 쉼터에서 한 달 한 차례 이 책을 토대로 노동법 교육을 할 계획이다. 미얀마에는 정착되지 못한 '최저임금 제도와 역사', '왜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인가' 등 추가 설명도 곁들인다고 한다.

김정열 마창거제산추련 부대표는 발간사에서 "임금 대신 지급된 종이돈,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던 노예 수준의 인권 유린에도 변함없는 정부 정책에, 입술로만 평등을 외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한다며 "책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이주노동자와 이를 지원하고 연대하는 단체와 활동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책 가장 뒷면에는 이 문구가 적혀 있다. '노동자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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