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불금 책정 꼼수…건강보험료 미가입에도 빼고 지급
사업장 이동자유 제한 탓에 비정상적 노동력 제공 여전

외국인노동자에게 가불금이나 건강보험료 명목으로 임금을 기형적으로 지급해온 일부 업체들의 행태가 드러났다. 사업장 이동 자유를 제한한 고용허가제의 맹점을 이용해 임금을 줄이려는 업체들의 '꼼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사업장을 옮기기 어려워 고용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편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가불금 = 네팔에서 온 노동자 ㄱ 씨는 2014년 4월부터 거제시에 있는 한 조선부품업체에서 일했다. ㄱ 씨는 2016년 2월부터 월급에 '일당제'를 적용받았다. 그때부터 ㄱ 씨 급여명세서에는 '가불금'이라는 항목이 붙었다.

2018년 2월 급여명세서 기준, ㄱ 씨 일당은 10만 5000원이었다. 그달에 ㄱ 씨는 16.5일을 일해 기본급 173만 2500원(10만 5000원 ×16.5일)을 받았다. 여기에 2시간 연장근무를 해 '시간 외 수당'으로 2만 8000원(1만 4000원×2시간)을 받았다. 기본급과 수당을 더한 176만 500원에서 ㄱ 씨는 22만 7460원을 세금으로 냈다. 이렇게만 보면 ㄱ 씨 월급은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가불금'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달, ㄱ 씨 명세서에 적힌 가불금은 24만 7500원이었다. 결국 ㄱ 씨가 받은 실제 금액은 178만 540원(기본급+수당+가불금-세금)이었다. ㄱ 씨는 올해 2월 퇴사할 때까지 가불금이 포함된 월급을 받았다. ㄱ 씨는 회사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월급을 당겨 받은 적이 없다.

ㄱ 씨는 "명세서상 일당은 10만 5000원이었지만, 애초 내가 설명받은 건 12만 원이었다"며 "다른 외국인 노동자 3~4명도 같은 방법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ㄱ 씨 주장대로라면, 가불금은 일당에서 일부(1만 5000원)를 떼 준 게 된다.

김승환 바른길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퇴직금을 적게 주려는 편법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법정 퇴직금은 퇴사 전 마지막 3개월을 기준으로 '1일 평균임금 ×30일 ×총 재직일수÷365일'로 잡는다"며 "세전 금액이 높으면 퇴직금도 늘어나는데, 가불금은 이 금액을 낮추기 위한 편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방법을 쓰더라도 퇴직금은 100여만 원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며 "하지만 몇 년 동안 여러 명에게 적용했다면 회사는 상당한 이득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2018년 2월 기준 일당은 10만 5000원이 맞다"며 "퇴직금을 줄이기 위한 편법은 절대 아니다. 퇴직금이나 임금을 줄이려 했다면 시급제로 운영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ㄱ 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낼 예정이다.

◇건강보험료 = 2013년부터 울산에 있는 자동차부품 열처리 업체에서 일한 네팔 노동자 ㄴ 씨. 당시 합법적인 체류 기간이 끝난 ㄴ 씨는 업체 요청에 따라 미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일했다. 미등록 상태인 ㄴ 씨는 건강보험 가입이 안 된다. 하지만 회사는 올해 3월까지 ㄴ 씨 월급에서 매월 8만~11만 원을 건강보험료 명목으로 떼 갔다. 7년 동안 공제한 금액은 700만 원에 달한다.

ㄴ 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진정을 접수한 울산고용노동지청은 원청과 사내 하청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만약 사측 실수라면 그 차액만큼 지급하면 되지만, 고의성이 있다면 관계 법령에 따라 사기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개선해야 = 김해이주민의집 대표 수베디 목사는 이러한 업체들의 꼼수를 막으려면 직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고용허가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국내 취업 기간 3년 중 3차례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변경 사유는 △사용자가 먼저 근로계약을 해지할 때 △회사가 휴업·폐업할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일부 근로기준법을 위반했을 때다. 변경 신청이 접수되면 고용노동부는 사실관계 확인 등을 거쳐 처리해준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주 승인·동의 없이 이직할 수 있다고 말하나,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변경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근로조건 위반 행위만 보더라도 노동자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

수베디 목사는 "일부 업체는 외국인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으리라 보고 비정상적인 임금·노동환경을 제공한다"며 "외국인노동자는 직장을 잃을까 봐 부당한 처우를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노동자도 임금 체계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주민센터 등 대응 창구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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