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서 20년 된 라이브 공연 바 수년간 적자 끝에 역사 속으로
"음악 주제 문화가치 있는 공간, 사회 관심·최소한 지원 필요"

그곳엔 음악이 있었다. 그곳엔 지역 밴드가 설 무대가 있었고 관객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곳엔 음악을 사랑하는 주인장 이창곤(59) 씨가 있었다. 경남대 부근에서 20년간 자리를 지킨 재즈바 '올 댓 재즈(All That Jazz)'가 지난 7월 말 문을 닫았다.

안타까웠다. 지난 2016년 창원 재즈클럽 몽크가 문을 닫은 뒤 라이브 공연을 하는 창원의 오랜 역사의 재즈바마저 문을 닫았으니 말이다. 이 대표가 수년간 적자를 무릅쓰며 공간을 지켰건만 코로나19 타격이 컸나 보다. 지난 1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평화동 카페 '소모스 호이(somos hoy)'에서 그를 만났다.

이 씨에게 음악은 소중한 존재다. 14살 때 비틀스 음악을 들은 뒤부터 그는 LP를 수집했고 현재 4000장의 음반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걸 넘어 집착할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참여한 부마민주항쟁의 후유증 때문일까. 그는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는 현재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회장이다) 이 씨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고 주위는 물론 나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그럴 때 음악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경남대 사학과를 나온 그는 지난 2001년 학교 근처에 재즈바를 만들었다.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문화적'이고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사회적'인 공간 하나쯤은 대학가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에게 올 댓 재즈는 일종의 '지방식민지 독립선언'과 같았다. 서울에 문화적으로 종속된 지방, 스스로 이를 탈피해 지역의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보자는 거다. 그의 바람대로 20년간 올 댓 재즈는 무대에 설 기회가 적은 지역 밴드에 열린 공간이고 그들의 음악을 듣고 즐기는 관객이 있는 공간이었다. 이 씨는 그 공간을 묵묵히 지켰다.

초반에는 생각외로 지역민보다 외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무대 위에 음악뿐만 아니라 각자의 생각, 이야기를 올리고 싶었는데 외국인들이 내 생각을 잘 이해해주고 고향같다며 많이들 왔다"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주말이 되면 진주, 부산 등지에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하루하루가 파티같이 행복한 날도 있었지만 아닌 날도 있었다.

▲ 이창곤 올 댓 재즈 전 대표. /김민지 기자
▲ 이창곤 올 댓 재즈 전 대표. /김민지 기자

처음에 무료였던 공연을 돈을 내고 보는 재미, 직접 돈을 받고 하는 공연의 재미가 라이브 공연을 더욱 '라이브'하게 만든다는 마음에 유료 공연을 시작했다.

하지만 '공연은 공짜'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이 씨는 "(문화공간이 유지되기 위해선) 무대를 채우는 사람, 그걸 즐기는 사람, 공간을 만드는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하지만 그걸 맞추기가 어려웠다"며 "사람들이 술집이나 펍(pub·대중술집)에서 돈을 내고 공연을 즐긴다는 부분에서 인색한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어쨌든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건 문화다"며 "예술가를 존중하고 예술행위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댓 재즈를 거쳐 간 밴드, 관객은 셀 수 없이 많다. 각자 인생의 페이지에 새긴 추억, 에피소드도 많을 테다. 이 씨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수년간 적자를 보면서도 문을 닫을 수 없었던 건 세월이 주는 무게, 의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만에 온 손님이 '여긴 아직 그대로네요'라며 추억에 잠겨 이야기하거나 결혼했다며 아이를 데리고 오는 손님을 보면서, 가게를 닫는 게 그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까지 묻어버리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 댓 재즈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카페 소모스 호이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소모스 호이는 그가 좋아하는 아르헨티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곡 제목이다.

이 씨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지역사회에서 음악을 주제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운영했다는 자긍심이 있다"며 "하지만 개인이(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며) 문화적으로 가치있는 공간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사회적 관심,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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