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재즈 감상 글쓰기 수업서 보여준 예시글 책으로
문화·역사적 배경·감상법 등 담아…초보자에 친절한 설명도

문화부 음악 담당을 하면서 재즈를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마니아 수준은 아니다.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기자로서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과제처럼 재즈를 듣는다. 그래서 한편으론 음악을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몸은 공연장에 있는데 머리는 기사 걱정 탓에 '안드로메다'에 있는 때, 말이다.

책 <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는 선배가 추천했다. 아무래도 음악 담당을 맡고 있으니 읽으면 좋겠다 싶어 나에게 건넨 책 같다. 직접적인 말은 안 했지만.

이 책은 마산무학여고 국어 교사 이강휘 씨가 썼다. 그는 지난해 고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재즈 듣는 소녀들'을 개설했다. 학생들이 재즈를 듣고 감상을 써보는 수업이다. 이 씨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참고삼아 예시글을 몇 편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엔 책이 돼 나왔다. 5장으로 구성된 목차가 재밌다. 장마다 부제를 '방과 후 재즈 수업 #1, #2, #3, #4, #5'로 달고 수업 시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재즈와 자연스레 엮었다.

책은 재즈가 태어난 문화적·역사적 배경, 재즈를 듣고 읽는 법을 소개한다. 또한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 쳇 베이커(1929∼1988), 데이브 브루벡(1920~2012), 소니 롤린스(1930~) 등 음악가를 설명하고 저자는 그들의 대표 추천 앨범을 소개한다. 재즈는 직접 들어야 한다. 재즈계의 전설 루이 암스트롱(1901∼1971)은 "재즈가 뭐냐"고 묻는 이에게 "그렇게 묻고만 다니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다행히 책에는 정보무늬(QR코드)를 찍으면 언제든지 스마트폰으로 재즈를 들을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서 촉발된 '인종 차별'이 이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가 인종 차별 관련 내용만 나오면 밑줄이 그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초창기 재즈는 미국으로 강제 이주한 아프리카인들이 불렀던 노동요와 그들이 참석했던 교회에서 부르던 가스펠이 다양한 음악적 경향과 만나 만들어졌다. 재즈는 미국 흑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당시 대부분의 빅밴드 단원들이 흑인이었음에도 그들이 연주하던 클럽들에서 흑인 관객의 출입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알면 인종 차별로 얼룩진 미국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다.'(17쪽)

'누구나 거장이라고 칭하는, 재즈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 정도는 들어보았을 법한 저 유명한 마일스 데이비스마저도 페르소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는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가면을 썼어야 했을 수도 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에 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거칠게 보이는 방식을 택해야 했을 수도 있고, 흑인들이 만들어낸 재즈라는 장르를 백인들에게 빼앗기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오만이라는 가면을 선택해야 했을지도 모른다.'(26쪽)

교사인 저자는 학교 현장 이야기를 재즈와 접목해 말하기도 한다. 어른도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잘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10대인 학생들은 오죽할까.

재즈를 좋아해서 방과 후 수업을 개설한 저자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교육적 가치로 여긴다고 한다. 그는 19명 학생 모두에게 '재즈, 생각보다 좋은데?'라는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재즈는 역시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반응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싫어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개인의 기호를 살펴보는 과정이니까.'(59쪽)

소니 클락(1931~1963)이 1985년 낸 앨범 <쿨 스트러팅(Cool Struttin')>의 경우 음반 표지가 독특하다. 음악가 얼굴 대신 하이힐 신은 여인의 발걸음을 내걸었다.

소니 클락은 당시 "왜 내 얼굴이 표지에 없느냐"고 항의했지만 블루노트 레코드는 '쿨한 발걸음'이라는 제목의 곡을 극대화하고자 과감한 시도를 꾀했다. 결론적으로 이 앨범은 일본에서 대박을 터뜨렸고 이후 반응이 없던 미국에서 재평가를 받게 된다.

저자는 소니 클락의 음반 표지를 빗대어 "한 사람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각자 다양한데 학교라는 조직은 성적이라는 편협하기 짝이 없는 기준 하나만으로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할 일이다. 미국 재즈 팬들의 과오로 내가 의 멋진 재킷 사진을 감상할 기회를 날려버릴 뻔한 것처럼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한 아이의 유능한 재능을 묻어버릴 수도 있으니까.'(120쪽)

책은 술술 읽히는 편이다. 특히 재즈 초보자에게 추천한다. 재즈를 이제 막 좋아하게 된 사람인데 어떤 곡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겐 '찰떡'이다.

점점 더워지는 요즘. 책을 덮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아트 페퍼(1925~1982)의 '칠리 페퍼(Chili Peper)'나 들어야겠다.

42미디어콘텐츠 펴냄. 207쪽.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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